[김은진의 가을에세이]⑫ '한 발짝 뒤에서' 배영수의 4번째 우승반지

김은진 기자 2011. 11. 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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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시리즈 가운데 2004년 삼성과 현대의 한국시리즈가 가장 인상에 강하게 남아있다. 9차전까지 가 심지어 빗속 혈투를 벌였던 양 팀에서,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이를 꽉 물고 던지던 9차전의 조용준도 강렬했지만, 그보다 앞서 4차전에서 보여준 배영수의 역투는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 사실 지금도 배영수를 보면 그 경기부터 생각난다.

배영수는 그날 10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8회 볼넷 하나를 준 것을 빼면 연장 10회까지 혼자 116개를 던져 안타 1개도 맞지 않았다. 대역투를 하고도 삼성이 득점에 실패해 연장 11회 불펜에 공을 넘겨주고 내려오면서 배영수의 '노히트노런'은 인정되지 못했다. 경기도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날 경기를 마친 뒤 감정이 북받쳐서 엉엉 울었다는 스물네살 배영수는 그 해 한국시리즈에 4경기나 등판했다. 4차전을 포함해 1·8차전에 선발로, 7차전에는 불펜으로 올랐다.

2006년에도 배영수는 에이스였다. 4차전에서는 아예 콘택트렌즈도 끼지 않고, 테이핑도 않은 채 전혀 준비없이 경기를 보다 갑자기 호출받아 구원 등판한 적도 있다. "공 7개를 던져보고 급하게 마운드에 올랐는데 긴장을 하니 눈이 안 보이는데도 던져지더라"고 했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만 5경기에 나갔다.

날렸던 과거의 배영수가 생각난 것은 2차전을 앞두고 "배영수를 1~2점 뒤지는 상황에 추격조로 투입하겠다"는 삼성 류중일 감독의 말을 듣고서다. 삼성을 대표하는 에이스 배영수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추격조'가 돼 있다.

실제로 배영수는 3차전에서 1-2로 뒤진 8회 등판해 0.2이닝을 막고 내려갔다. 한국시리즈에만 19경기 등판해 이번 한국시리즈 출전 투수 가운데 가장 경험이 많지만, 이번에는 한 발 살짝 물러나있다.

2007년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잘 되다 안 되다를 반복하는 사이 몇 년이 지났다. 시속 150㎞를 던지던 강속구 투수는 "이제 140㎞도 못 던질 것"이라는 말도, "기교파로 변신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가운데 오기도 생겼지만, 그 틈에서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배영수는 "지난 3년을 돌이켜봤다. 곰곰이 생각하니 시행착오를 겪었다. 힘으로 할 때는 힘으로, 상황에 맞는 피칭을 해야 하는데, 나는 강속구와 기교파 사이에서 잘 던져보려고 하다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올해 시즌을 앞두고 일본에 진출하려다 실패한 경험까지, 배영수는 많은 일을 겪었다. 누구나 인생에 고비와 전환점이 오듯, 배영수도 지금 고비를 거쳐 전환점에 놓여있다.

배영수는 지금 신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신인들하고 얘기해보면 마음이 편하다"며 화려했던 그때 한국시리즈에 대해서는 "어릴 때는 다 추억"이라고 말했다.

2009년보다 지난 해가 좋았고, 지난 해보다는 올해가 나았다. 이제 내년은 더 좋아질 것을 기다리고 있다.

배영수는 "투수는 눈이 뜨이는 시기가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올해까지는 도약할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다. 한 번쯤은 다시 올라갈 때가 오는데 내년을 그렇게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생애 7번째 한국시리즈에서 "한 발 물러나 가장 편하게 봤다"는 서른한살 배영수는 4번째 우승반지를 꼈다. 이제 제2의 야구인생을 위해 도약할 2012년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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