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여사 타계]추모의 글 - 당신의 삶을 꿈꾸며 살겠습니다

정지아 | 소설가 2011. 9. 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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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시대의 어머니. 자식의 죽음을 뛰어넘어 기꺼이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던 당신이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자식이 있지만 눈앞에서 자식을 잃어야 했던 당신의 마음을 저는 감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휘발유를 끼얹고 제 몸을 불살라야 했던 당신의 아들 전태일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당신의 손을 붙잡고 당부했습니다.

"내가 죽어 작은 창구멍 하나 낼 테니까, 노동자 학생들과 힘을 합해 그 창구멍을 조금씩 넓히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당신은 죽어가는 아들을 보며 내 몸이 가루가 돼도 너와 약속한 것은 지키겠다고 울부짖었다지요? 그때 당신은 겨우 마흔하나였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일본군에게 아버지를 잃고, 가난밖에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물려줄 게 없는 당신이었습니다. 초등학교조차 가르치지 못한 아들이 세상에 나가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목숨을 끊었을 때 당신은 어찌 그 고통을 견뎠습니까? 아들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는 것이 당신에게는 못난 어미로서의 마지막 책임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살아있는 전태일이 되었겠지요. 당신과 전태일의 친구들이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시발점이 된 청계피복노조를 설립하고, 어린 청춘들을 죽음의 지경으로 몰고 가던 근로조건을 개선한 일이야 민주화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겠다고 싸우는 곳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경찰들에게 얻어맞고, 때로는 감옥에 갇히면서도 당신은 투쟁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당신은 독한 싸움꾼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당신을 투사로 만든 것은 아들 전태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천만 노동자의 아픔이요, 그 아픔을 제 자식의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모성이었습니다. 이소선 여사,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였습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위대한 어머니, 당신의 품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당신은 부산에 가는 게 소원이었다지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신의 유언을 아프게 마음에 새겼을 겁니다.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더는 당신의 아들처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아파서 더욱 깊은 어머니의 마음을요.

전태일은 죽었어도 그의 뜻은 살아 역사를 움직였듯, 당신이 죽었어도 당신의 뜻은 살아 또 다른 역사를 움직일 것입니다. 당신의 반평생이 걸려 몇 걸음 전진했듯 앞으로의 전진도 더디고 더뎌 지금까지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시잖아요?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삶으로 증명했잖아요? 아무리 더뎌도, 때로는 멀리 돌아도, 인간의 역사는 반드시 전진합니다. 그러니 편안히 가세요.

당신이 떠나던 지난 3일, 이곳 남도의 하늘은 유난히 드높고 푸르렀습니다. 당신의 삶 또한 그러했지요. 드높이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신 당신, 그리하여 또다시 꿈꿀 수 있게 해주신 당신,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으로 하여 남은 우리들, 앞으로도 꿈꾸며 살겠습니다. 약속합니다.

< 정지아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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