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논쟁 맞수에서 복지국가 '동지'로

이종태 기자 2011. 7. 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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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시민사회에서는 '재벌개혁(해체)론'과 '사회-재벌 대타협론'이 대립한다. 재벌개혁론의 대표 주자로는, 참여연대를 기반으로 활동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 등이다. 사회-재벌 대타협론자는 대안연대의 이찬근 인천대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등이다.

대체로 노동권과 분배에 친화적인 이 지식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은, 재벌의 이중성 때문일 터이다. 재벌이라는 특수한 '기업집단 모델'이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에 일정하게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병철·정주영·박태준 등 카리스마 넘치는 총수들이 국가의 특혜적 금융 지원에 기반해 자동차·반도체·철강 같은 당시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 모험적인 투자를 했고 성공을 거뒀다. 이런 성공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경영권 안정'. 당시 한국에서는 대기업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없었고(특히 외국인), 이는 누구도 총수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다는 것.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재벌 가문은 강력한 경제 권력을 기반으로 사익을 추구하는가 하면 각종 특혜와 정경 유착의 원흉이기도 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맨 왼쪽부터)

이런 상황에서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경제 시스템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핵심은 '자본시장의 자유화 및 개방'이었다. 결국 해외 금융자본이 한국 대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면서 경영권까지 가질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이다. '기업 그 자체'가 월스트리트가 주도하는 '금융 장사'의 상품이 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의 합리적 핵심이다. 산하 기업 주식 중 극소수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전횡하던 총수들로서는 계열사 주식 거래가 자유화되는 경우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당시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위협하는 (경제) 민주주의 성격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재벌 논쟁이 복지국가 논의로 수렴

이런 상황에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대기업을 총수의 전횡에서 해방시키는 데 방점을 찍으며 재벌개혁 운동에 나섰다. 이에 반해 대안연대는 재벌개혁 운동이 해외 자본에게 국내 대기업을 넘기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데 착목했다. 그래서 재벌 가문이 궁지에 몰린 틈을 타서 '경영권 안정'과 '투자·고용·세금' 등을 교환하자는 대타협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양측의 견해가 수렴되어가는 경향은 흥미롭다. 김상조 교수의 경제개혁연구소는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 업적을 쌓으며 '기업집단법'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유종일 교수와 홍종학 교수는 이전의 재벌개혁론에 복지국가의 문제의식을 담았다. 대안연대 측의 이찬근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 할 금융경제학을 탐구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의 금융투자자화'에 우려를 표시하며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승일 연구위원은 '회사 기회 유용' 등 재벌의 불법 행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며, 재벌 가문과 계열사의 세금(소득세와 법인세)을 대폭 인상해서 복지국가 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재벌 논쟁이 복지국가 논의로 수렴되면서 한층 고도화되는 양상이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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