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백선엽 영웅화, 친일 면죄부 포석?

2011. 7. 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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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KBS 특집 다큐멘터리 < 전쟁과 군인 > 친일 행적 축소·은폐 논란

"간도성 일대는 게릴라(항일무장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계속해 치안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빴다. 간도특설대의 본래의 임무는 잠입, 파괴공작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특수부대, 스페셜 포스로서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의 훈련이 자주 행해졌다."(2000년 일본에서 출간된 백선엽 회고록 <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 > 중)

"우리가 전력을 다해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을 것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백선엽 회고록 < 대게릴라전 > 중)

6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등이 백선엽 찬양방송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1993년 일본에서만 출간된 회고록 < 대게릴라전 > 의 진술은 간도특설대에 대한 백선엽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1989년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 40주기를 즈음하여 회고록 < 군과 나 > 를 출판했다. 이는 당시 경향신문에 42회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출판기념회에는 대표적 만주군 출신 인사인 정일권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 책에서 백씨는 간도특설대(간도성 조선인 특설부대) 전력에 대해 "한인부대에서 3년을 근무했다"고만 적었다. 백씨가 책 출간 이후 여러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도 특설대 전력은 나오지 않는다.

간도특설대 임무는 항일 세력 토벌

22년이 지나 KBS에서 지난 6월 24, 25일 방영한 특집 다큐멘터리 < 전쟁과 군인 > 도 마찬가지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백씨의 광복 이전 행적에 대해 "백선엽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됐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백씨가 항일무장세력 '토벌'을 주임무로 하는 간도특설대에 2년 반 동안 근무했던 사실은 나오지 않았다. 나머지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 군과 나 > 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간한 < 친일규명 보고서 > (4-7권, 820~835쪽)에 따르면 백선엽은 1940년 봉천군관학교 제9기생으로 입학해 이듬해 12월에 졸업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인으로 만주국 장교가 된 사람은 모두 67명으로, 이들 중 한 명인 백선엽씨는 자발적 친일의 전형이다"라고 말했다. 백씨는 1943년 2월부터 만주 간도성 명월구의 조선인 특설부대로 전임돼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근무했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일제의 괴뢰정부 만주국의 간도성장이었던 이범익이 조선총독부에 조선인으로 하여금 동북항일연군(조선인, 중국인 등의 항일 연합군)을 토벌하는 특설부대 조직을 건의해 만들어졌다. 이 부대는 일부 고위 장교가 일본인이었을 뿐, 전원 조선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총 108회의 토벌활동을 벌였으며, 알려진 것만 해도 172명의 항일 독립군과 민간인을 사살했다. 친일규명위는 "간도특설대는 항일세력의 토벌에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하나의 유형으로 따로 다루었다"고 밝혔다.

1930년대 간도성은 조선인들의 항일 유격활동의 근거지였다. 이 지역 총 인구의 70%인 46만여명이 조선인이었으며, 10개의 항일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항일유격대들은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돼 활동을 지속했으며, 일부는 한반도까지 진출해 유격활동을 벌였다.

백선엽이 들어오기 이전 간도특설대는 주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일본군과 합동으로 수차례 항일연군의 근거지를 공격했다. 시신에서 내장을 도려내거나, 연군 측 여성을 강간하기도 했다. 연군 측도 1939년 8월 특설대를 기습해 16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일본 측은 사망자들을 위해 '16용사 전적비'를 전투 현장에 세웠다. 만주에서 발행된 친일 성향의 한국어 신문 만선일보는 "우리의 암인 비적단 섬멸에 탁월한 공적을 남겼고, 현재도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어려움과 싸우는" 특설대원들의 활약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조건 전 친일규명위 조사관은 "1943년부터는 백선엽도 특설대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44년 초부터 특설대는 간도를 떠나 현재 랴오닝성 서쪽에 위치한 열하성과 하북성(허베이 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일규명위는 이를 "이미 간도성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부대를 이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백선엽 역시 1944년 열하로 넘어가 1945년 초까지 근무했다. 당시 특설대는 일본군에 파견된 만주군 철석부대 산하에서 정보수집, 반공 선전 및 체포된 항일연군 심문 등을 맡았다. 특설대는 열하에서 약 6개월간 항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인, 중국인 20여명을 살해했다.

백선엽이 간도로 돌아오기 직전인 1945년 1월까지는 하북성에서 항일세력으로 의심되는 주민들을 공격했다. 1944년 8월 5일에는 피난가는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고, 임신부를 살해했다. 특설대가 고춧물 붓기, 가죽띠로 죽을 때까지 구타하기, 총검으로 찌르기 등의 고문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몇 달 사이에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특설대 손에 죽었다.

친일규명 보고서 일반인 접근성 떨어져

1951년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과 대화 중인 백선엽 당시 1사단장. |경향DB

특설대가 속한 철석부대 정보반 주임 김석범(2대 해병대 사령관, 재향군인회 창립 멤버)은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리 만주군인 출신은 일제 압제 하에서 조국 땅을 떠나 유서 깊은 만주에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한 혈맹의 동지들이다. 우리는 타향인 만주에서 철석같은 정신과 신념 밑에서 철석같은 훈련을 거듭하여 8·15 해방을 맞이하였다." 이후 백선엽을 비롯해 정일권, 김석범, 김창룡, 신현준 등은 박정희와 더불어 '만주군 인맥'을 형성하며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공영방송이 백선엽 회고록을 방송한 반면,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규명위의 활동내역을 파악하기는 어렵게 됐다. 2009년 11월 26일 친일규명위의 활동이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일규명위의 홈페이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 전 조사관은 "독자적인 역사관을 세우지 못한 채 모든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기게 됐다. 거기서도 내용을 볼 순 있지만, 직접 홈페이지를 운영할 때보다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전문이 올려져 있던 < 친일규명 보고서 > 는 공공도서관을 직접 방문해서 봐야 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보고서를 읽기도 쉽진 않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내 도서관 21곳(어린이도서관 제외) 중 친일규명위 보고서를 소장한 곳은 11곳에 불과하다. 반면 < 군과 나 > , 작년에 발간된 <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 등 백선엽 회고록이 비치된 도서관은 18곳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간도특설대의 부대원이라면 부대가 했던 일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KBS의 백선엽 영웅화는 그보다 더한 친일활동을 벌인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일본군 출신 중에도 5·16 쿠데타에 반대하는 등 평가할 만한 사람들이 있는데 왜 백선엽이냐"며 "KBS 같은 곳에서 자꾸 불러내니까 특설대나 부패전력 등 과거가 계속 들춰지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설대 활동에 대한 백선엽 본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백씨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보좌관은 "백 장군이 경향 측과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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