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우리의 아픈 현대사는 많은 국민들에게 씻을 길 없는 상처를 남겼다. 송정고등공민학교 시절 중3 여학생반인 우리반의 반장 옥자네도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안고 살았던 가족이었다. 책임감 있고 당찬 옥자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실과선생님과 옥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 옥자 어머니가 참 훌륭해요. 아버지 없이 컸어도 어머니 교육 때문인지 애들이 참 반듯하고 성실해요. 옥자 아버지가 어떻게 일찍 가셨는지…?” 했더니 뜻밖의 얘기를 했다. “저기요. 옥자 아버지는 아파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셨어요. 그걸 얘기하면 빨갱이라고들 하니까 옥자 엄마가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말한 거예요.”

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양민 수십만명이 조직적으로 학살된 사건이라는 것을 나는 외숙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60년 4·19 혁명 직후의 제2공화국에서는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장면 총리가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보도연맹 사건’을 철저히 금기시해 버렸다. 유족들을 ‘빨갱이’로 몰고 ‘요시찰 대상’으로 지목해 항상 감시했으며, 연좌제로 옥죄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장재성 선생도 보도연맹 사건으로 생매장당한 한 사람이었다.

내게 큰 감동을 줬던 40대 초반의 옥자 어머니가 역사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면서도 아이들 교육에 성의를 다하는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프기도 했고, 그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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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과 큰 배움을 함께 느끼며 보낸 송정고등공민학교에서 1년 남짓 새내기 교사 생활을 마치고 62년 10월 정규 중학교인 송정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특별히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광주에서 가까운 학교로 또 발령이 나 의아했다. 교감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송정중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원해서, 교육위원회에서 내 인사기록카드를 보고 발탁해 배치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2학년 수학과 1학년 영어를 가르쳤다. 요즘에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도 하지만 그때는 중학교 입학해서야 영어를 처음 배웠는데, 그 중요한 시작을 수학교사인 내가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참으로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2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 업무가 몹시 힘들었다. 가정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은 광주시내로 진학을 하고, 송정중학교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이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 납부금 걷는 일이 담임의 중요한 임무로 주어졌다. 반마다 담임이 직접 납부금을 거둬 서무실(지금의 행정실)에 내야 했다. 직원회의 때마다 교감선생님이 학급별 납부 상황 보고를 하고 납부 성적이 좋지 않은 담임은 근무평정까지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잡부금도 많이 걷었는데 그 역시 담임의 임무였다. 학생들에게 납부금과 잡부금을 독촉하고 거둬들이는 일이 내겐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환경정리도 점수를 매겨 발표와 함께 상을 줬는데 학급별 경쟁 방식이 내겐 민감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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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교사는 담임을 해야 교사로서 사명과 보람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정중 첫해 담임을 맡았던 변영희 학생은 내게 그런 보람을 느끼게 해준 제자 중의 한명이다. 키가 작아 늘 맨 앞줄에 앉았던 귀엽게 생긴 모범생이었는데 멀리 경북 문경에 살아서 자주는 못하지만 지금도 종종 안부를 물으며 교류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잡무가 너무 버거워 1년 뒤 교감 선생님한테 담임을 그만하겠다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은 “나이도 젊고 주요 과목을 맡고 있으신데 선생님이 담임을 안 하면 누가 합니까?”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교직사회의 분위기로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이의제기 없이 무조건 따라야 했다. 그런데 새내기인 20대 교사가 감히 담임을 못하겠다 말했으니 교감 선생님으로서는 언짢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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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경력이 오래된 영어과 이순일 선생님에게 상의를 했다. “선생님, 저는 담임을 안 맡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 “담임? 상담교사를 하면 담임 안 할 수 있는데 경력 15년이 되어야 자격이 돼요. 정 선생님은 이제 경력 3년이니 자격이 안 되잖아요.” 당분간은 담임을 맡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앞으로 교사생활이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위안은 송정중학교에서도 도서계를 맡은 것이었다. 교장실에 도서실이 있었고 책도 제법 있었다. 도서계를 계속 맡게 된 것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는데 마침 사서교사 양성교육에 신청할 기회가 생겼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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