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초대석>인순이 "'나가수' 섭외 왔지만 탈락 강박에 거절"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 2011. 5. 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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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3주년' 대규모 콘서트 여는 인순이

인순이(본명 김인순·54)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서울에 있는 줄 알고 전화했다가 "부산이에요"라는 답변을 받기 십상이다. 워낙 바쁘게 살다보니, 그를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다.'왜 그렇게 바쁘시느냐'고 물으면 그는 "집에 가만히 있는 체질이 못돼서…"라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인순이는 요즘 "바쁘다" 대신 "바쁜 척한다"는 말로 인사를 바꿨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표현 대신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영리한 대처법을 터득한 듯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말을 좀 빌리자면, 일종의 '연예 지도층의 배려'인 셈이다.그는 늘 무대에서 "3학년 3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33세라는 의미다.(그러고보니, 그는 올해 데뷔 33주년을 맞았다.) 지금쯤 4학년이나 5학년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학년은 그대로인데, 반이 5반으로 바뀌었다"며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인순이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즐겁다. 무대를 삼켜버릴 듯 뛰어다니며 열창하는 그의 모습은 평소 그의 생활을 그대로 복사해온 것 같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솔직하게 답하는 언변,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인생, 그리고 굴곡의 쓰린 경험도 지난한 삶의 여정도 모두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철학에서 그는 무대의 자신을 쏙 빼닮았다. 그를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무대다. 7,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더 판타지아(The Fantasia)'란 타이틀로 무대를 꾸리는 그는 지금까지 1000회가 훌쩍 넘는 공연을 통해 얻은 '디바(Diva·최고 여자 인기가수)'의 명성에 정점을 찍는 무대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이 굉장히 화려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제 공연은 노래로 알려지는 콘서트보다 볼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히트곡이 많아서 노래로만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가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디바'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히트곡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남의 노래도 부르면서 볼거리에 중점을 두는 거예요. 어쨌든 관객을 흥분시키고, 저를 끌어모을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잖아요."

―일명 '라스베이거스쇼'라 불리던데요.

"제가 가수인 이상, 너무 확 갈 수는 없잖아요.(웃음) 쇼와 뮤지컬 요소를 전반부에 적극 도입하지만, 후반부엔 감상을 위주로 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공연을 할 때마다 특이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지금까지 공연의 주요 콘셉트가 레드의 잔다르크 같은 이미지였다면, 이번에는 화이트의 중세시대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마냥 고풍스럽지만은 않아요. 또 트렌드를 많이 벗어나지도 않죠."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춤도 선보이는 '파격'무대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구상까지 하셨나요.

"제 공연은 3대가 같이 모여 보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 구성원이 서로 제 무대를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예요. 제가 샤이니의 '링딩동'을 부르고 춤추는 걸 손자가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설명하고, 구성진 트로트 가락 한번 뽑으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다시 얘기하는 식이죠. 저는 어머니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서로 얼굴 마주보면서 '풋 유어 핸즈 업'(Put Your Hands Up·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힙합에서 주로 쓰는 관객을 향한 여흥구)하는 게 너무 좋아요. 제가 다른 가수 노래 부르면 '뺐는다'고 질책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곡이 오래남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계속 불러주는 일은 필요하다고 봐요."

인순이는 '최초'아니면 '최고'라는 수식어에 익숙하다. 혼혈 가수로는 최초로 '흥행 가수'가 됐고, 국내 가수 중 최초로 복음성가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 '꿈의 무대'로 불리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두 차례나 공연을 펼친 유일한 한국 가수이기도 하다. 젊은 힙하퍼와 협연한 곡 '친구여'는 그를 최고의 디바로 만들었고,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최고'란 말을 어김없이 꺼냈다. 그에게 최초와 최고 중 어떤 단어를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최초가 더 좋아요. 최고는 그 위치에서 안 내려가려고 너무 많이 고민해야 하니까요. 최초는 살짝 모자라도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덤으로 얻잖아요. 호호."

―공연을 본 사람들은 쉽게 '광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결이 있다면.

"전 제가 갖고 있는 걸 그대로 표출하는 스타일이에요. 브라운관 같은 어떤 장치를 통해 절 거르고 가는 게 아니라, 거름없이 그대로 듣고 보는 이의 가슴 속에 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기쁘면 (듣는 이도) 기쁜 대로 웃고, (제가) 슬프면 슬픈 대로 우니까요. 한겹 씌우지 않고 직접 전달하는 데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닐까요?"

그런 열정으로 '나는 가수다'에 나가서 '뭔가' 보여주면 어떨는지 그의 의향을 살짝 떠봤더니 예상한 대로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섭외가 들어왔지만, 제가 간이 아직 크지 못해서…. 겁날 것 같아요. 전 그냥 무대에서 제 감정이 이끄는 대로 편안하게 놀면서 노래하고 싶은데, 거기서는 떨어지지 말아야겠다는 강박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공연을 할 때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관객 눈앞에서 부를 때예요. 제가 즐겨야 관객들도 제 표정을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큰 규모의 공연장엔 잘 서지 않는 편입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에서 제 발이 삐걱거린다든지, 음정이 떨린다든지, 눈이 긴장하고 있다든지 하는 모든 순간들을 다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2006년 2월9일자 문화일보 1면 톱 기사엔 인순이와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던 경험, 혼혈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 등에 대해 에누리없이 고백했다. 당시 12세였던 딸 세인이 자신처럼 상처 받지 않도록 미국에서 출산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혼혈은 국적이 아닌 문화로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문화일보가 '다문화 코리아'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인순이는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며 반가워했다.

―2006년 당시 딸 세인의 정체성 문제를 많이 걱정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 딸아이가 벌써 18세예요. 혼혈이라는 문제에 대해 지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제가 국내 혼혈아동복지기관 '펄벅재단'에 20년째 봉사활동하면서 이사로 '승진'하는 사이, 딸아이는 이곳에서 학생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어요. 학생회를 통해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돕는 활동을 펼치고 있죠. 이를테면 바자회를 열어 물건을 팔고, 과자를 직접 만들어 파는 식인데, 그 돈을 모아서 펄벅재단에 기부해요. 제가 생각할 때, 이런 일은 딸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는 일들이거든요. 다문화가정에 대해 세인이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죠."

―지금 다문화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추석이나 구정되면 차례 지내잖아요. 고추장이나 된장, 김치도 매일 먹는데다, 한국 역사도 배웠어요. 어떻게 제가 한국사람이 아니겠어요? 그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와도 마찬가지죠. 최근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 가도 적응을 못해 떨어져 나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생님 나름대로 아이를 품어줘야 할 것 같고 국가 차원에서도 교육에 특별히 신경을 써줘야 할 것 같아요. 교육과 문화 혜택 부분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우리가 너무 쉽게 그들을 대하고 있지만, 다문화 인구가 늘어날 때 문화를 함께 공유하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만든 멋진 사회가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기왕에 받아들이기로 했으면 마음을 활짝 열고 수용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좀 게을리한 탓에 배에 힘이 떨어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떠는 인순이. 당장 윗몸 일으키기와 등산을 다녀와야겠다며 의욕을 다졌다. "우리 같은 가수는 관객들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무대 위에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걸 완수해내기까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과정도 중요하거든요. 무대 아래 관객들은 다 알아요. 그 과정을 절대 속일 수는 없죠. 과정에 공을 많이 들여야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어요."

장기 생존법에 대한 그의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간단치 않아 보였다. 자신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수많은 후배들, 그리고 무대를 멋있고 맛있게 꾸리고 싶어하는 공연 가수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관객들은 너희들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순간적으로 노래를 틀릴 수는 있지만, 연습 하지 않은 티는 숨길 수 없다. 무대에 오른 가수는 굳건히 땅을 짚고 서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수의 덕목이자 의무다." 최고의 공연은 최초의 태도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인순이가 그걸 보란듯 증명하고 있었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

<수요 초대석>7, 8일 '더 판타지아' 공연… 라스베이거스쇼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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