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사라-0(제로)'

강일중 2011. 5. 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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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사라 케인(Kane)은 영국의 요절 극작가다. 1999년 28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첫 희곡인 '파괴된(Blasted)'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그리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야기 구조 보다는 한 장면, 한 장면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가 즐겨 사용한 극작 소재는 사랑의 상처와 고통, 성적 욕구, 고문, 죽음 등 어두운 것들. '정화된 자들(Cleansed)'에서는 그레이스가 죽은 마약중독자 오빠 그레이엄의 영혼과 성행위를 한다. 관객에 따라서는 메스꺼움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있는 소지도 충분히 있다.

제32회 서울연극제의 공식참가작으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 위에 오른 '사라-0(제로)'에는 사라 케인 작품의 특징이 묻어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 작품의 구상 초기 단계에서 황진주 작가와 이성구 연출은 사라 케인의 삶과 작품 속에서 나타난 도발적이고 잔혹한 사랑의 얘기를 추적해 무대 위에서 구현해 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헌데, 작품이 완성돼 가는 과정에서 사라 케인 작품 속의 인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졌다.

'사라-0'는 두 개 축으로 장면이 전개된다. 한 축은 의사와 그의 정신세계 속 여인이다. 의사는 여인을 사랑했으나 여인은 자살했고 의사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여인이 죽은 시점을 기준으로 의사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다른 한 축은 그 의사의 여자 환자와 그녀의 내면세계다. 이 환자는 어렸을 적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를 잊으려 한 남성을 사랑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동성을 사랑했으나 그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세계에서 의사는 여자 환자를 치료하는 존재이지만 의사 역시 상처가 깊은 환자다. 두 사람 모두가 각자의 비현실세계를 통해 아픈 기억과 상처를 끄집어낸다.

이 작품의 무대는 독특하다. 객석 쪽은 의사와 환자 그리고 남자 간호사가 있는 현실의 세계다. 날카롭고 아주 찬 느낌의 은색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현실세계는 커다란, 역시 알루미늄 문을 사이에 두고 무대 안쪽 의사의 정신세계 또는 환자의 내면세계와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극이 진행되면서 의사는 문열림과 함께 자신의 기억 또는 비현실적 정신세계로 빠져들어 가고, 환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로 진입한다.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에는 모두 제목에 있는 '제로'를 상징하는 원형 틀이 있다. 말 그대로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한대 또는 굴레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 깊은 곳의 정신세계에서는 사랑을 갈구하며 말로써 사랑을 확인하려는 의사가 여인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나 자위하는 몸짓 등이 있다. 내면세계는 아버지를 사랑하거나 이성을 사랑하는데 실패한 환자의 자해 행위 같은 이미지들의 몸짓을 통해 뚜렷하게 부각된다.

병렬 구조의 장면들만 있고 기승전결이 없는 작품이며 그만큼 난해하다. 대신 극 속에는 사랑, 고통, 욕망과 결핍의 이미지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강한 시각적, 또 그 너머 심적 느낌을 자극한다. 이해에 어려움이 있지만 극의 마지막에 가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 사랑에 관한 상대방의 아픔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 속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작품의 성격상 배우들의 연기가 뚜렷이 부각되는 연극은 아니다. 무대는 인상적이다. 다만, 첫날의 경우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를 오가는 장면에서, 열리고 닫히면서 이미지 각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의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 연극 '사라-0(제로)' = 극단 가변 제작. 올해 초 서울연극협회의 차세대 연극연출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의한 3개 공연작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돼 이번 서울연극제에 공식 참가하게 됐다.

만든 사람들은 ▲작 황진주 ▲재구성/연출 이성구 ▲무대 이윤수 ▲의상 오수현 ▲조명 한원균 ▲작곡 김현림 ▲편곡 조형섭 ▲움직임 이승준 ▲조연출 김민선.

출연진은 김성태(의사)ㆍ임정은(여인)ㆍ사라(박혜영)ㆍ민재원(간호사)ㆍ이현경(내면 1)ㆍ권오준(내면 2)ㆍ나시내(내면 3).

공연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4월21일~24일.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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