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밀착취재]일본 관광객 달라진 것 5가지.."점심은 홍대 조폭떡볶이로"

2011. 5. 1. 09: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는 문화서 체험문화로…"매운 맛도 OK"명품보단 저가 상품 선호

골든위크를 맞은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골든위크는 4월 29일 전 일왕의 생일을 기점으로 5월 3일 헌법기념일, 5일 어린이날을 포함한 일주일간의 연휴다. 일본 회사의 사정에 따라 최장 10일까지 쉴 수 있어 이때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 수가 급증한다.

골든위크가 시작된 지난 29일 일본인 관광객을 동행하며 이들의 여행패턴과 관심사를 밀착 취재했다. 이날 동행한 일본인 관광객은 가이드업체 '투어 코리아'의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20~40대 21명이었다. 일정은 '청와대-경복궁-민속박물관-인사동-남대문시장-명동-남산타워-한강' 코스. 이 프로그램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총 12시간 동안 진행됐다.

옆에서 지켜본 일본인 관광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이날 관광에서 타문화에 소극적이고 명품 쇼핑을 즐기는 부유한 일본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새롭게 발견한 일본인의 관광 풍속도 5가지를 꼽아봤다.

◆ 보는문화에서 체험문화로…침 맞고 "스고이(대단해)!"

타나카 준 씨(53) 가족은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자유일정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족여행이니만큼 우선 함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자유시간에 각자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을 체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타나카 준 씨는 남대문 근처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고 부인은 한의원, 20대 두 딸은 피부미용숍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는 "일본에 온천이 있다면 한국엔 사우나가 있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를 밀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인인 타나카 키쿠요 씨(51)는 "드라마 '대장금'과 '허준'을 보며 침도 맞고 한약도 먹어보고 싶었다"면서 "막상 침을 보니 무섭지만 여성질환도 치료하고 동양사람 체질에 맞는 한의를 경험해 볼 생각에 즐겁다"고 밝혔다.

오후 1시 타나카 키쿠요 씨와 두 딸을 따라 한방미용숍과 한의원을 같이 하는 명동의 '이은미 한의원'을 찾았다.

이 한의원은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통역사가 따로 있었고 한의사가 드라마 '대장금'의 의상을 입고 진료하는 행사도 진행했다. 일본에 한약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까지 실시하고 있었다.

이은미 원장은 "올해 3~4월 한의원을 찾은 일본인이 전년동기대비 2배 정도 늘었다"며 "일본인 고객이 증가하며 지난해에는 일본의 유명 방송사인 아사히TV가 나와 한의원의 치료 방법이나 효과를 촬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인의 관광패턴이 쇼핑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보는 것'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날 관광을 도운 이상철 투어 코리아 가이드에 따르면 일본에서 한국 사극 열풍이 불며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명동에 있는 한의원이나 목욕탕은 고객의 70~80%가 일본인인 상황이다.

◆ "점심 메뉴는 홍대 조폭떡볶이로 할게요"

체험관광이 확산되며 일본인 관광객이 찾는 음식 메뉴도 크게 변했다. 일본인은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아 야키니쿠(불고기), 지지미(전) 등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주로 먹었지만 최근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운 맛'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

이에 따라 투어 코리아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먹는 '구루메(식당) 여행' 코스에 신당동 떡볶이와 의정부 부대찌개. 김치 전골 등 매운 음식을 추가했다.

오후 12시 30분 26살 동갑내기 타나키 마스즈 씨와 마사지 오노 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남대문시장 삼계탕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이 일본 관광객임을 알아보고 물에 씻은 하얀 김치를 내주자 타나키 씨는 "기무치 말고 한국 김치 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는 "일본에도 김치가 많지만 다 일본인 입맛에 맞게 조리됐다"며 "한국에 왔으니 진짜 매운 김치나 찌개류를 많이 먹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 요코미조 씨(32)는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홍대 조폭떡볶이와 한국 드라마 주인공처럼 빨간 김치랑 라면을 냄비째 먹어 보고 싶다"며 "한국의 매운 맛은 고통스럽지만 묘하게 당긴다"고 설명했다.

◆ 쇼핑 성지는 '롯데마트 서울역점'

키미코 모테지 씨(37)는 인사동 전통거리, 남대문 시장 등 쇼핑하기 좋은 관광지를 무심히 지나쳤다. 일본인의 관광코스 중의 하나인 명동의 롯데·신세계 백화점에서도 눈으로만 즐기는 아이쇼핑이 전부였다. 그의 지갑을 열린 곳은 백화점도 시장도 아닌 대형할인마트 '롯데마트 서울역점'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한 그는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빨갛게 표시한 지도를 훑어본 후 익숙하게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장을 한 바퀴 돌며 쇼핑카트에 김과 유자차, 라면을 담았다.

카미코 씨는 "여기서 쇼핑하려고 기다렸어요. 일본 네티즌들이 다 여기를 추천해줬어요. 서울 관광지랑도 가깝고 값도 싸다고요"라며 "명품의 경우 백화점보다 면세점이 더 싸고 시장은 상인들이 일본인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소문이 퍼졌어요"라고 설명했다.

실제 롯데마트에 따르면 서울역점의 일본인 고객 수는 월평균 4만여명으로 전체 고객의 10%에 달한다. 외국인 고객 중에는 80%를 차지한다.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사는 상품은 '마켓오 리얼브라우니 선물세트'와 '생활의달인 파래김자반'이었다. 두 제품은 각각 지난 3월 서울역점에서만 한 달간 5400개, 1만4000개가 팔렸다.

이 가이드는 "시장 상인들이 비싸게 받고 잔돈을 안 주는 일이 몇 번 일어난 후 가격이 공개돼 있고 비교적 저렴하게 파는 마트를 좋아한다"며 "가이드들 사이에서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쇼핑의 성지'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 인기 쇼핑품목 女' 저가 화장품' 男 '패션양말'

이들의 쇼핑목록도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명품 쇼핑을 좋아하는, 일명 한국 백화점계의 '큰 손'이었던 일본인의 쇼핑 품목이 '저가 브랜드 화장품'과 '길거리 패션양말' 등으로 변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명동 본점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의 매출 비율은 2009년까지만 해도 87대13(1월경)으로 일본인이 압도적이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중국인의 매출이 일본인을 앞섰다. 중국인의 백화점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일본인 관광객이 백화점 쇼핑을 즐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백화점 명품소비는 줄었지만 저가 브랜드의 화장품 쇼핑은 큰 폭으로 늘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일본인 관광객의 손에는 모두 미샤, 토니모리 등 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네이처리퍼블릭에서 콜라겐 마스크와 달팽이 크림을 40만원어치 산 미치코 미조구치 씨(29)는 "한국 여자처럼 피부가 깨끗해지고 싶어 한국 화장품을 많이 샀다"며 "품질도 좋고 일본 화장품보다 훨씬 싸 지인들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네이처리처블릭 명동점의 점주는 이에 대해 "일본인 고객수가 점점 늘며 4월에는 하루 1000명 정도가 방문했다"면서 "일본 지진 이후 소폭 줄어든 매출을 이번 골든위크에 만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패션양말도 일본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았다. 특히 히로시게 오타키 씨(33)는 이날 한 켤레에 1000원인 패션양말을 50켤레나 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여행을 다녀오면 지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오미야게 문화'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는 이 패션 양말이 가장 좋다"며 "여행와서 경비도 많이 들었는데 이왕이면 저렴한 쇼핑을 즐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 카라·소녀시대 덕분에 남성 관광객 증가

이번 골든위크 관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남성 관광객의 증가였다. 이 가이드에 따르면 기생관광이 사라진 이후 일본인 관광객의 80% 이상은 여성이었다. 남성, 특히 젊은 남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J리그에서 활동하는 축구선수가 생기고 여자아이돌 카라, 소녀시대 등이 일본에서 활약하며 지난해부터 젊은 남성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다.이날 동행한 일본인 관광객 21명 중 8명이 남성이었다. 게다가 20대의 젊은 남성이 대부분(6명)이었다.

26세 남성 타나키 마스즈 씨는 "드라마나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를 접하는 일본인은 여성이 많았지만 최근 한국 여자 아이돌이 오리콘 차트에서 1위에 오르고 한국 드라마를 24시간 방영하는 채널이 생기며 남성들도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TV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재방송을 보며 배우 이영애의 광팬이 됐다"며 "한국에 와서 대장금에 나온 음식도 먹고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