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작가' 구자형이 추억하는 '별밤지기' 이문세

신일하 2011. 4. 22. 11: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리포트 신일하의 연예 X파일] MBC 라디오 '별밤지기' 이문세가 인기 절정 시절 동거한 남자가 있다. 1985년 4월 시작하여 1996년 12월 3일까지 햇수로 12년이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 DJ로 최장수 기록을 남긴 이문세가 장가들기 전까지 이따금 이문세의 아파트 방을 찾아 함께 기거하며 실과 바늘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 그 주인공은 방송작가 구자형씨. 방송작가, 음반제작자, 시인, 소설가, 가요평론가.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많다. 구자형 작가를 만나 이수만, 유열과 함께 마삼 트리오로 유명한 이문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이문세는 14대 별밤지기였죠. 전성시절 그의 목소리 분위기는 파란 가을하늘 같았어요.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충만감을 주는 목소리. 뭔가 씻겨나가는 마치 정화되는 듯 감을 주는 목소리라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어요" 개그맨 서세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전격 발탁된 이문세.

"당시 '안성기의 O시의 플랫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별밤'의 연출자가 황세환 PD(2000년 작고)로 바뀌며 '별밤' 작가로 옮겼죠" 구 작가는 서강대 출신 황세환PD와 구면이었다. 황PD가 학창시절 노래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 공연에 참여, 아는 사이라 자연스럽게 '별밤'작가 섭외를 받았다. 이로 인해 MBC 라디오에 황세환, 이문세, 구자형의 '별밤 황금트리오'가 탄생하게 이르렀다.

"이문세의 모든 걸 알고 그걸 방송 원고로 창조해내야만 살길을 찾는 거라 그의 아파트까지 찾아갔던 겁니다." 방송국 안에서는 물론이고 이문세와 구자형 작가는 수시로 동행할 정도로 붙어 지내는 생활이었단다. 하지만 심야에 방송을 끝내고 귀가하고도 이문세는 그냥 잠드는 날이 없었다.

"저는 잠을 자는데 '별밤지기'는 여전히 불 켜고 뭘 봐요. 집에 도착한 팬들의 엽서가 매일 한 보따리가 되는데 그걸 일일이 체크하느라 잠을 설쳐요. 꼼꼼히 다 읽고야 잠드니--" 함께 별밤을 했던 시간 중 불편했던 건 불 켜진 방에서의 잠자는 것 뿐이었다는 구자형 작가. 팬 관리에 남다른 정성을 쏟은 이문세의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팬레터 하나라도 그냥 버리는 걸 못 보았다는 구 작가는 "문세의 별밤 팬 관리 열정은 남달랐다"고 실토. 일요일이면 이문세 아파트를 찾아오는 여고생 팬이 많았다. 팬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어느 날부터 이문세는 팬들에게 성적표를 갖고 오라고 했다는 것.

"성적 나쁜 애들에게 점수를 올려서 가져와 하고 돌려보내요. 그래야 만나준다고. 정말로 오른 성적표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러면 동네 레스토랑 가서 밥이나 피자도 사주며 공부 잘 하라고 격려해주니 애들이 감동할 수밖에요." 선정된 팬들을 초청, 2박3일 캠핑을 떠나는 행사 '별밤 가족마을' 등의 아이디어를 황세환PD가 냈고, 가서 친오빠처럼 정답고 친밀하게 지냈던 이문세의 '별밤지기' 정신과 정성은 지금도 혀를 내 두를만하다고 설명한 구자형 작가는 "이문세는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마치 신들린 듯 토크를 쏟아내는 재능을 지닌 DJ였다"고 칭찬했다.

"이따금 '별밤지기'의 눈시울을 적시는 코너가 있었어요. 에세이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행복과'인데 '별밤' 2부가 시작되며 송창식 로고송이 나가요. 3분 정도 에세이를 낭송하다 보면 문세가 저도 모르게 낭송에 취해버려요. 글에 감동되어 그렇다고 하며. 그럴 때면 작가의 보람을 맛 보았죠" 그 코너도 황세환PD가 만든 것으로 '별밤' 애청자의 호감도 1위 꼭지였다.

'가난한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자, 청취자가 나이 들었을 때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자, 한국적 아름다움을 전하자' 등 세 가지 테마가 담긴 에세이를 꾸며, '별밤' 애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구자형 작가. 이 코너를 위해 자신만이 추구한 특유의 방송취재를 했다며 그는 털어놓았다. 부지런히 젊은 층이 즐겨 찾는 곳을 취재하여 수첩에 기록했다는 구 작가는 "제 수첩에는 대학 2학년 이상 학생의 연락처는 없었어요. 순수 '별밤' 청춘뿐이었죠. 당시 제 정신연령은 17세였다고나 할까--"하며 껄껄 웃었다.

매일 아침 10시 정동의 MBC 도서실로 출근해 원고 자료 수집하고 방송 원고를 위해 취재를 나갔던 그는 "이문세와 저녁 7시면 꼭 만나요. 스태프들이 다 함께 밥 먹으며 그날 방송할 걸 논의하죠. '별밤' 6년 정말 '별밤'에 미쳤던 것 같고 그래서 '별밤'의 신화가 창조된 것 아닌가 생각해요"하며 이후 둘은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속을 읽는 사이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장수 별밤지기 DJ 이문세 탄생'에 일조한 구 작가는 "이문세처럼 프로 의식에 투철한 스타는 없는 것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구자형씨는 이후 1992년, 2001년에 MBC 방송대상의 라디오 부문 작가 대상을 2회 수상했다.

신일하 편집위원 ilha_shin@tvreport.co.kr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 정우성 열애 '미스터리 투성이'남진 윤복희 조용필, 시대 초월한 스타중의 스타, 가수중의 가수[영상속 키스이야기 ③]충무로를 발칵 뒤집은 최초의 키스신'한국 재벌가는 범죄소굴'-막장TV드라마 진단양준혁은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일까?'나가수' 찬반, 대중의 귀는 열어줬지만 참가수를 삐에로로 만드는늦깎이 스타 커플, 결별에 쿨해진 이유?

Copyright © TV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