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형 "내가 연기하는 이유요?"(인터뷰)

문완식 기자 2011. 4. 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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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문완식 기자]

배우 이달형 ⓒ사진=류승의 인턴기자

"하지마! 배우는 평생 빌어먹고 사는 직업이야."

배우가 되고 싶어 방송국 문을 두드린 스무 살 이달형(44)에게 국장은 "빌어먹고 살 것"이라며 다른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국장의 말을 뒤로 하고 방송국 문을 나서며 이달형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어디 빌어먹는지 두고 보자!" 그리고 23년. 이달형의 연기 인생이 이어진다.

'이달형'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그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년 넘게 연극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TV에 본격적으로 출연한 건 지난 2004년 KBS 드라마 '오필승 봉순영'부터다. 당시 그는 봉순영(채림 분)에 맞서 강신일, 김승욱과 '민전무 트리오'를 구성, 반대파로 등장했다. '감초 연기'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그는 오는 5월 2일 방송예정인 KBS 2TV 새아침극 '두근두근 달콤'과 6월 방송예정인 KBS 1TV 대하사극 '광개토대왕' 출연을 앞두고 있다.

◆10살 때부터 홀로 살아.."열등감 덩어리였다"

이달형은 고졸이다.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연줄'도 없다. '한(恨)'이 그를 연기의 세계로 이끌었다.

"누나들과 살다가 10살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 일하면서 학교에 다녔죠. 남들과 다른 제 인생이 억울하고,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는 '유명인'을 꿈꿨다. 유명해지면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세상에 '폭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이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 전의 선생님들과 다르셨어요. 모두를 똑같이 대해주셨거든요. 부모가 없어도, 가난해도, 같은 학생이었죠."

'안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6학년에 진급하고, 그는 또 다시 다르게 취급 받았다. 5학년 때 담임선생이 그리웠던 이달형은 그 선생을 찾아 웅변반에 들어갔다. 웅변은 이달형을 또 한 번 바꿔 놨다.

"단지 선생님을 보고자 들어갔는데 처음 접한 웅변이 너무 재밌었어요. 묘한 흥분감도 들고요. 연단에 올라 웅변을 하면 밑에서 나를 지켜보는 학생들한테 우월감이 들었거든요. '봐라, 나는 너희가 못하는 것을 이렇게 올라와 하고 있다' 뭐, 이런 생각이었죠."

그는 "그래봤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고 고백했다. '유명인'이 되고 싶었지만 중, 고 시절 학업성적은 형편이 없었다. 공부로 유명인이 되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그는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배우 이달형 ⓒ사진=류승의 인턴기자

◆연극 무대 올랐지만 15년 간 집 없이 전전.."무대서 한(恨)풀이"

군대를 다녀온 이달형은 1989년 연극 '꿀맛'으로 본격적으로 대학로 연극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배고픔은 해결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난'이 생활인 시절이었다. 그는 "15년간 집이 없었다"고 말했다. 집을 못 샀다는 말이 아니다. 몸을 눕히고 편히 쉴 곳이 없었다.

"15년간 잘 곳이 없었어요. 극장 구석에서 자는 건 차라리 행복했어요. 마로니에공원 벤치에서 자고, 인근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자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고나서 아침에 일어나 극장에 가서 무대에 올랐죠. 남들은 배고픈 시절 차비가 없어서 걸어 다녔다고 말하지만 전 15년 동안 그게 인생이었어요."

이달형은 "독기로 연기를 했다"고 했다. 연기로 성공하기 위해 가릴 것이 없었다. 늘 주목 받고 싶었고, 늘 남들보다 튀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제 인생의 한을 다 내뿜었어요. 복받치는 감정을 무대 위에서 나 풀었죠.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불만이 많았어요. 늘 튀려했으니까요. 하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너희가 내 한을 알겠냐'고 생각했죠."

가난한 배우 이달형을 도와주던 '아는 형'이 있었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군에서 머리를 다쳐 소일거리로 생활을 이거 가던 사람이었다. 그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였지만 어려운 이달형에게는 힘이 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 형님과 술자리를 하는데 제게 '네가 할 수 있는 연기가 뭐있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울컥했죠. 그래서 '형이 내 연기를 뭐 안다고 그러느냐, 난 무대 위에서 한을 풀어낸다'고 받아쳤어요."

이어 나온 '아는 형'의 대답은 그를 한동안 말없게 만들었다. 이달형은 '해머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형이 한다는 얘기가 '배우가 다른 사람들의 한을 받아들이는 블랙홀이 돼야지, 스스로의 한을 풀어내면 그게 배우냐'였어요. '쿵'하는 느낌이었죠. 제 한을 풀려고 남들을 한 맺히게 한 셈이었죠. 내가 살려고 남들을 죽이고 있었던 거예요."

◆2003년 서른여섯 살에 드라마 데뷔.."아직은 배우 꿈 못이뤘다"

스무 살 때 들었던 "배우하면 빌어먹는다"는 얘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현실을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무대에 서면 설수록 배고픔은 커져갔다. 연극 무대에서 아무리 이름을 날려도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한'을 조금씩 떨치며 무대에 오르고 있을 무렵, 엄기백PD(KBS)의 눈에 띄었다. 그가 후배 지용수PD에게 이달형을 소개시켜줬다. 드라마를 시작하게 됐다. 2003년 서른여섯 살 때였다.

이달형은 "지용수PD가 검증 안된 배우는 못 쓴다고 해서 '안 되나보다'하고 그냥 가려고 했었다"면서 "근데 지PD가 '검증 받겠냐'고 하기에 대본 받고 '검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놔', '빨리 내놔', 처음 대사가 단 두 마디였어요. 사채업자2요. 대본 리딩을 하는 데 사채업자1이 연극계 선배더라고요. 인사했더니 연출자에게 말해서 재밌는 대사 2개를 제게 주셨어요. 네 마디 짧은 연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카메라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달형씨, 우리 자주 보게 될 것 같아요'라고요. 감이 왔죠."

이후 단역을 계속하다 지용수PD의 단막극 'S대 법학과 미달사건'과 '벗으면 보인다'를 통해 그는 조연급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오필승 봉순영'으로 본격적으로 '감초 배우'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렸다.

그는 지난 2008년 마흔 살이 넘어 결혼했다. 돌이 갓 지난 아들이 하나있다. 최근에는 단편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주연배우를 맡았다.

"살만해졌냐고요. 아직은 아닙니다. 연기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그게 살만해지는 거죠. 여전히 목표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지금도 직업은 물론 '연기자', '배우'지만 아직은 배우로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때가 되면 진정한 배우가 되는 거겠죠."

배우 이달형 ⓒ사진=류승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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