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문 (5) 촬영장서 잔심부름하며 연기공부 열정

2011. 3. 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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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의 스타 다방은 당대 유명 배우들이 집결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지금은 은퇴하신 조문진 감독님(당시 조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는 "아침 먹고 촬영장으로 가자"며 앞장서 다방을 나갔다. 우리가 간 곳은 충무로의 유명한 설렁탕 집. 이미 스태프 100여명이 왁자지껄하며 설렁탕을 비우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설렁탕 한 수저를 뜨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드디어 영화 밥을 먹는구나' 생각하니 감격스러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루에 가락국수 두 그릇으로 끼니를 때웠으니 허겁지겁 먹을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촬영장은 나에게 배우로서의 전초전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당시에는 조감독이 대사를 읽어주고, 그것을 받아 배우가 연기했다. 내 생각에 이것은 정석이 아니었다. 영화계에 막 뛰어든 신인이 이런 상황을 이야기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몇 번 반론을 제기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번은 미리 스태프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장소를 알아뒀다. 식사를 하자는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식당으로 달려가 감독님 자리에 방석을 깔아놓고 기다렸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서는 감독님을 맞으며 벗어놓은 구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자리도 안내했다. 서둘러 밥을 먹고는 감독님 앞에 신발을 놓아드렸다. 스태프들의 심부름도 곧잘 했다. 촬영장을 철수할 땐 먼저 나서 카메라나 조명기기 등을 챙기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김수용 감독님이 나를 불렀다. "인문아, 내일까지 이 대본을 읽어보고 여기에 체크되어 있는 인물에 대해 분석해 와라."

떨리는 두 손으로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다. 읽기를 반복하며 완전히 머리에 입력시켰다. 이튿날 감독님 앞에서 나름 분석한 인물에 대해 차분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가 그 역을 할 수 있겠니?"라고 물으셨다. "예! 잘할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이 내 생애 첫 영화 '맨발의 영광'이다. 1968년 이 작품으로 한국 영화계에 '김인문'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렸다. 영화를 찍으면서 조감독이 읽어주는 대사를 전혀 받지 않았다. 사전에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했고, 대사를 모두 외웠기 때문이다. 카메라나 조명감독들이 이 같은 나의 열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연기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잘 생긴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구수한 인상 때문에 주조연급으로 맹활약했다. 당시 나는 지금은 작고한 김승호 허장강 박노식 최남현 주선태 선배들의 연기를 유심히 보고 배웠다. 그들의 몸짓, 말씨, 표정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에게 맞는 배우론을 정립했다. "배우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정확하며 깊은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특히 부지런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지런해야 남보다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수확도 거둘 수 있었다. 성경에도 부지런함에 대한 교훈이 잠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나오지 않는가. 내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이 원리를 따를 때, 인생은 더 풍요로워진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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