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경제]"해봤어?"와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차이

2011. 3. 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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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현대그룹은 요즘 추모 분위기가 짙다. 오는 3월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앞두고 그를 기리는 추모음악회와 추모사진전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 이 같은 범현대가의 추모 분위기 속에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갈등을 빚은 현대차와 현대그룹 간 화해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지도 주목받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채금자(책임자), 해봤어?"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가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한결같이 "미쳤다"였다. 돈 기술 경험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그런 직원들에게 "해봤어?"라고 물으며 다그쳤다. 이런 현대가의 정신은 현대차를 자동차 부문 세계 5위에 진입시켰고, 현대중공업을 최고의 선박제조회사로 만들었으며, 현대그룹이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정 명예회장을 두고 쓰는 책에는 늘 "해봤어?"가 타이틀로 붙을 정도다.

정 명예회장 다시 묻지 않을까? "해봤어?"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 화법을 즐겨 쓰는 이가 있다. 바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내가 민주화 운동을 해봐서…" "나도 체육인이다. 수영연맹회장을 해봐서…" "내가 노점상을 운영해봐서 아는데…" "나도 창업했던 소상공인 선배라 아는데…" 등의 화법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이 화법은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성장해 해병대와 아주 친숙하다" "한때 시인을 꿈꾼 적도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을) 2주에 한 번 시켜서 먹는데…"로까지 발전하면서 경험의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깨고 있다.

본인과 청와대야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메시지라고 하지만 듣는 민주화세대, 노점상, 소상공인, 청년실업자 등은 '복장 터진다'는 반응이다. 상대방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많이 하고, 이미 30~40년이 지난 자신의 경험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대통령의 화법을 차용한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내가 농사해봐서 아는데… (살처분 가축의) 침출수를 퇴비로…"라는 발언까지 등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다수의 정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이 화법이 정주영 명예회장 화법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한다. 상대의 반박을 사전에 차단하는 자신감의 상징으로,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의 영향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화법과 이 대통령의 화법엔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 명예회장의 화법이 "해보지도 않고 포기 말라"는 '미래지향적' 주문이라면, 이 대통령의 화법은 인식·지식의 근원을 오직 경험에서만 찾는 '경험주의'를 표방해 "세상 다 그러니 참고 살아라"는 고통 감수형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국정엔 4대강 밀어붙이기, 세종시 논란, 친기업정책만 있지 부유세 도입, 무상급식 실시, 청년실업 해결 등 미래지향적 정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10년 전 3월 21일 타계한 정 명예회장이 아직 살아있다면 다음과 같이 묻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채금자(책임자), 해봤어?"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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