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리턴즈' 김병철 "언제나 최선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박대웅 기자 2011. 3. 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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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네버랜드'의 대장 피터팬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 속 피터팬은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했다. 어느덧 KBL 두 번째 최고령 선수가 되어버린 김병철. 그러나 그는 오리온스 팬들의 꿈과 희망을 재건하기 위해 묵묵히 땀방울을 흘려왔다. 그리고 44경기 만에 마침내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 ' Non-flying'

Peter Pan

"세월의 흐름을 많이 느껴요. 저도 사람이잖아요."

이는 김병철이 필자에게 꺼낸 첫마디다. 본인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KBL 두 번째 최고령에 올라서게 됐음을. 하지만 소속 팀에 젊은 선수들이 대거 들어오고, 다른 팀들 역시 리빌딩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덧 현실의 무게를 업보라 여기는 그다.

화려하게 빛났던 전성기에 비해 김병철의 말년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특히 올 시즌에는 44경기 만에 코트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마음고생이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었을 터.

"올해만큼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에 임했어요. 벤치에 있었지만 코트에 들어가면 어떻게 리드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예전에 코트에서 몸소 뛰며 느꼈던 시각과 벤치에 앉아서 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시즌이 끝나가면서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뛰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고, 특히 어린 선수들의 경험부족으로 자주 역전패를 당할 때는 그런 마음이 더 간절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무대는 다름 아닌 KBL 윈터리그(2군)였다.

"제가 서운해 했을 거란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자청을 해서 2군 경기를 뛰겠다고 했거든요. 코트에 들어선 적이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로써도 좋은 일이고, 2군 선수들 역시 뛰고 싶었던 메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는 그저 2군 경기에 나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의 환호소리를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1군 복귀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복귀전에서 단 10분간 출전하며 남긴 기록은 2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 더 이상 코트 위를 날 수 없는 피터팬이었지만 김병철에게 더 큰 욕심은 없었다.

"제가 지금 한창인 선수들 같았다면 당연히 욕심이 있었겠죠. 하지만 제가 5~10분 뛴다고 해서 경기가 뒤집힐까요? 제가 뛰어서 경기를 뒤집고, 이길 수 있었다면 경기에 자주 출전시켰겠죠. 가끔 기사를 보면 저를 진작 출전시켰어야 했다는 둥 왜 지금까지 안 뛰었냐는 둥 온갖 얘기들이 많더라고요."

김병철은 승패도 물론 중요하지만 '김병철이 들어왔는데 왜 팀이 살아나지 못하나'라는 팬들의 생각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했다. 본인 보다 한 살 어린 추승균과 서장훈이 '회춘'하는 모습과 비교되는 것도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추)승균이, (서)장훈이는 팀의 주축이고, 아직 20~30분씩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잖아요. 더 좋은 성적과 개인기록을 나타낼 기량을 유지하고 있고요. 하지만 분명 저는 팀의 주축이 아닌 상황이에요. 제가 팀을 단 몇 분 안에 구해낸다면 그게 정말 피터팬이고 슈퍼맨이겠지요."

소설 속 '진짜' 피터팬 되어주지 못한 그의 목소리에는 다소 힘이 풀려있었다.

# 팀의 재건을 위해...

차가웠기 때문에 따뜻함을 원했죠 /초라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싶었어 /그랬을 뿐인데 어울리지도 않는 짓이라고 /비웃을 건 또 뭔가요 /I am still waiting /I am dreaming /모두 멈춰버린 채로 /썩어버린 너처럼 되긴 싫어서 /아직 살아있다고 난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서 I'm dreaming.

가수 넬의 < 피터팬은 죽었다 > 에 나오는 가사 속엔 그가 코트 위에 남아있기로 결정한 이유가 담겨있는 듯하다. 사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후배들을 위해 길을 내줘야 한다는 팬들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끝끝내 팀에 남기로 결정했다.

"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단지 젤 중요한 것은 팀이 최근 몇 년간 계속 하위권이었기 때문에 지난 시즌 은퇴하기는 너무나도 아쉬웠죠. 제가 대구에 상당히 오래 있었잖아요."

김병철은 KBL의 유일한 원년 멤버이자 오리온스의 프랜차이즈 선수로서 우승의 영광과 꼴찌의 시련을 모두 경험해본 선수다. 지난 시즌 구단에게 연봉 백지위임신청을 하면서까지 팀을 재건해보고 싶은 그의 마음은 절실하기만 했다.

"저는 오리온스라는 팀에서 항상 좋은 것만 받으며 지냈어요. 구단에서도 저를 충분히 대우해줬고, 팬들 역시 제에게 늘 박수쳐주며 아껴줬죠. 하지만 올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결심이 빗나가면서 시련을 겪어야 했어요. 특히 팬들에게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차마 고개를 못들만큼 힘겨웠죠."

공교롭게도 오리온스의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진 2007-2008시즌부터 김병철 역시 급격한 하향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책감이 컸던 탓일까. 김병철은 매일 기도를 한다. 팀의 재건을 위해 힘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내년 시즌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팀이 다시 예전처럼 정상을 향해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사실 이대로 끝내기 창피하니까요. 우리 팀도 분명 좋은 팀이었는데… 성적이 좋게 나면 실추된 명예를 딛고 다시 한 번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 낚시광 김병철

다소 밝은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봤다. 김병철의 프로필 속 취미와 특기에는 모두 '낚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버지 故김인용씨에게 처음 낚시를 배운지도 어언 20년 째. 깊은 생각을 하기 위해 낚시를 하러 다닌다는 김병철은 곧 4월이 되면 본격적인 산란기가 시작된다며 표정이 밝아졌다.

"도시 속에만 있다가 시골에 경치 좋은 곳을 가면 사람이 없다보니 한적해서 좋아요. 그렇다고 혼자가면 무서우니까 선배나 친구, 낚시 쪽으로 인연을 맺게 된 좋은 사람들과 동행해요. 가서 다 같이 낚시를 하다보면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건져 올린 물고기는 대개 놔주고 돌아오는 편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갈 때는 매운탕도 종종 끓여 먹는다고. 그는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면 지루해 할까봐 강가에서 그물을 들고 함께 낚시에 임하기도 하는 자상한 아버지다.

이처럼 낚시를 좋아하다보니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많다. 지난 2007년, 김승현과 함께 붕어 300마리를 잡아 당시 오리온스 사령탑을 맡고 있던 이충희 KBS 해설위원에게 보약을 선물한 것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다. 김병철이 숨겨진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했다.

"낚시 바늘이 손에 박히면 잘 안 빠지고 살집이 뜯어지는 거 아세요? 제가 한 번 낚시 바늘이 엄지손가락에 박힌 적이 있었는데 죽어도 안 빠지더라고요. 오밤중에 바늘이 꽂혀서 손에 피는 철철 흐르고, 결국 그 상태로 응급실로 갔어요."

의사는 바늘을 어떻게 뺄지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에게 수술을 권했다고 한다. 마취를 시킨 후 살을 도려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그렇게 해달라고 하던 그 순간, 응급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분도 낚시광이었나봐요. '겨우 이걸 못 빼서 고민하고 있느냐'고 말하시더니 의사에게 비켜보라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간호원에게 마취를 지시했어요. 그리고 낚시 바늘 끝을 끊어서 반대로 돌려서 빼니까 쏙 빠지더라고요. 바늘이 꽂힌 자리에는 구멍만 나있고요. 의사가 신기하게 지켜보더니 나중엔 다 같이 박수를 치는 상황이 연출됐죠. 하하하."

# 팀원들이 말하는 김병철

김병철과의 인터뷰 다음 날은 대구에서 오리온스와 SK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 열린 날이었다. 김병철은 평소 팀원들에게 '최고참 선수'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선수를 비롯해 코치, 감독을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엿들어봤다.

"평소에 말씀이 별로 없으시고 과묵하신 분이에요. 선수들과 운동과 생활을 같이하기 때문에 감독, 코치님께서 놓치시는 부분들을 지적해줄 때가 많아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형님이시죠. 저와는 원정경기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어요. 나이 차(15년)가 워낙 많아서 불편할 수도 있는데 장난도 많이 걸어주시며 편하게 대해주십니다."

-오리온스 박유민-

"올해로 4년째 함께 지내면서 부쩍 친해졌지만 이번 시즌은 특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제 역할이 올해 많이 중요해져서 상대편의 견제가 심해졌는데, 팀플레이나 포스트업 할 때의 요령을 많이 배웠어요. 특히 병철이형이 시야가 좋다보니까 더블-팀이 붙을 때 어디를 봐야할지 알려줘서 제 어시스트가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저도 한국에 온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혼혈 선수라는 이유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이 들 때가 있는데, 병철이 형이 그런 부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줍니다"

-오리온스 이동준-

"병철이는 저하고는 동갑이면서도 선수 생활을 함께해왔던 절친한 친구에요. 코치와 선수의 관계이지만 서로 허물없이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에요. 병철이보다 더 믿음직하고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가 또 있을까요?"

-정재훈 오리온스 코치(2군 감독)-

"올 시즌 비록 출전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벤치에서 저와 김유택 코치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훌륭하게 캐치해서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줬습니다. 지도자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코치를 해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프랜차이즈 스타인만큼 구단 차원에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김남기 오리온스 감독-

# 피터팬의 못 다한 꿈

< 캡틴의 자격 > 은 각 팀 주장 내지는 고참급 선수들을 상대로 매 회마다 '은퇴 전 이루고 싶은 5가지'를 공통적으로 질문해왔다. 다만 이번에는 질문을 특별히 바꿔봤다. 바로 소설 속 피터팬처럼 돌아갈 수 있다면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1. 저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초등학교 다닐 때 잠시 해봤죠. 포지션이요? 당연히 볼-보이였어요. 들어가자마자 뭘 시키겠어요. 하하하.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는데, 유니폼이 나오기 전부터 제 자신이 계속 공만 나르고 있더라고요. 또 선배들이 따로 몽둥이를 찾을 필요도 없이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니까… 하하. 결국 못하겠다고 나왔죠 뭐. 다만 예나 지금이나 야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만큼은 변함없어요.

2.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운동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학교생활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중‧고교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대학 때 MT나 미팅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래도 운동선수는 얽매이는 게 많으니까요. 그땐 학교가 끝나면 같이 어울려서 놀러 다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요. 운동부는 선배들도 챙겨야하고, 합숙도 해야 하니까 운동할 시간되면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평범한 학생들의 자유분방함을 누려보고 싶네요.

3. 결혼을 해서 집사람과 아이들이 있지만 선수들은 대개 집을 자주 못 들어가잖아요. 운동을 안했으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좀 더 가정을 챙길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매일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같이 밥 먹고, 쉬는 날이 되면 아이들과 공원도 가고요.

# '대구의 No.10' 김병철과

양준혁

김병철은 무려 14시즌을 오리온스를 위해 뛴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사실상 현역 선수들 가운데 영구 결번 '제 0순위'후보다. 심지어 그가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뛸 당시에도 오리온스의 등번호 10번은 아무도 사용할 수 없도록 구단에서 조치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구의 10번'이라는 상징성을 김병철과 함께 나누고 있는 사나이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프로야구계의 전설 '양신' 양준혁이 그 주인공.

"개인적으로는 양준혁 선수의 팬이죠. 몇 번 뵙고 인사는 했는데 사적으로 두터운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직 아니에요. 시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야구장에 놀러 가서 종종 응원해왔어요."

실제 김병철은 지난 2010년 9월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양준혁의 은퇴식에 참석해 꽃다발을 전해준 적이 있다. '대구의 No.10'을 상징하는 두 스포츠 스타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고, 성대한 은퇴식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제가 은퇴할 때도 양준혁 선수가 와주겠다고 했었는데… 하하하."

하지만 김병철은 자신의 영구결번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아직 구단과 얘기를 해보진 않았어요. 요즘엔 영구결번을 많이들 하는 추세지만, 지금은 워낙 팀 성적이 안 좋으니까 그런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올 시즌이 끝나봐야 은퇴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영구결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들도 나올 수 있겠죠."

은퇴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하지만 오리온스에 계속해서 남아 지도자 생활을 통해서라도 팀의 재건을 돕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죠. 그것도 오리온스에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지금까지 줄곧 한 팀에만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팀에 있는 제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마지막으로 양준혁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양준혁은 "나는 야구의 신이 아니라 1루까지 열심히 내달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렇다면 김병철은 대구 팬들, 나아가 한국 농구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는 예전부터 최고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설령 최고가 됐다 해도 그 뒤엔 반드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저 항상 꾸준히 했던 선수고, 제 이미지처럼 말 없고, 튀지 않고, 항상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사진 = 박대웅 기자, KBL PHOTOS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1-03-08 박대웅 기자( yuksamo@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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