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된 전통 이용원 "회장이 와도 일단 기다려"

2011. 3. 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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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상에세이 이 사람] 이남열 성우이용원 이발사

일본강점기부터 3대째 가업이어…“인터뷰만 180번”

서울역 뒤편 만리동 시장 모퉁이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가 있다. 성우이용원. 주인 이남열(62)씨는 유명인사다. “152번 버스 타고 가는데 사장님 얼굴이 딱 붙었던데요.” 손님이 이발 의자에 누운 채 묻는다. “지금은 떼졌어.” ‘뭐 그만한 일로’라는 투다. 아침 뉴스에서도 봤다고 하자 “그건 지난달이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케이티엑스 열차 칸에 꽂힌 잡지에서 보고 찾아오는 이도 있어”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이발소 나무 유리창 뒤에서 까치발로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보인다. “아이구, 오늘은 좀 힘드네. 180번쯤 인터뷰한 것 같아. 160번까지 세다가 그만뒀어.”

이 이발소의 창업자는 일본강점기 때 조선 사람 가운데 두 번째로 이발면허증을 딴 서재덕씨. 이씨의 외할아버지다. 서씨의 조수였던 아버지는 7남매 중 다섯 번째 아들인 그에게 가위를 잡게 해 3대째 가업을 이어받도록 했다. 1927년 문을 연 성우이발소. 해가 거듭하고 세월이 흐르며 주인이 바뀌고 드나드는 손님이 바뀌었지만 이발소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가게로 사람들이 찾아 온다. “내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곳은 역시 이곳 뿐이야.” 15년 전 강원도로 떠난 이웃도 찾아오고, 점심께 들어온 금발머리 외국 손님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주인공처럼 수염을 깎아 달라며, 복사해온 레트 버틀러 사진을 내민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렇게 ‘고만 두려고’ 애썼는데 신기하지….”

여태 식초 푼 물로 머릴 감기는 왕 구식 이발소. 비싼 돈을 줘도 말끔하게 장식한 미용실로 가겠다는 손님을 잡을 수는 없었다. 세상엔 퇴폐 영업하는 이발소만 남은 듯했고, 하나뿐인 아들은 이발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목구멍 풀칠을 해야 가업도 잇는 거지.” 그렇게 떠났던 사람들이 아이엠에프를 지나고, 머리도 잘 깎고 가격도 싼 이 가게로 다시 몰려들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솜 터진 의자 위로 올라앉았고, 조금 더 유명해지니 대기업 회장님들도 가게 앞 골목에 고급차를 대고 기다렸다. 세 개 뿐인 전동 의자를 혼자 지키던 이발사는 그때 ‘인정 받는 기분을 맛봤다’고 했다.

“회장님들이 올 때는 떨리지 않으세요?”

“아니. 누가 와도 1:1이지. 회장도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머리를 감길 수 없는 거야.”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고 손을 저었다. 이발은 만 원. 면도는 5천 원. 명품 칼을 쓸 때는 오천 원을 더 받는다. 85년 된 가게를 지켜온 이발사에겐 원칙이 있다. 시장통 깡패가 오면 큰소리를 질러 내쫓았고, 술 먹은 손님은 받지 않았다. 단, 오는 손님은 모두 그에게 똑같이 대접받았다.

“(대기업)회장도 기다렸다 깎고 가. 팁은 없어. 그걸 바라는 건지도 몰라. 이게 내가 그 손님들을 꼬시는 방법이야.”

바랜 사진처럼 오래된 이발소.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손님이 밀려와 이씨는 앉을 새조차 없다. 해가 저물자 손끝을 동여맨 얇은 붕대가 느슨하게 풀어지면서 갈라진 손끝이 드러났다. “아무리 로션을 듬뿍 발라도” 늘 갈라진다. 43년 동안 머리를 감기면서 비누 독이 올라 그렇다.

“쉬운 일은 아니야. 시장통엔 24개 미장원이 있어. 그 한복판에 우리 이발소가 있다고. 이발 의자에 앉으면 내 사람을 만들어야 해. 지독한 손님들도 오지. 냄새도 참아야 하고. 전염병에도 강해야 해. 벅벅 면도칼로 시원하게 깎아달라는 손님을 만나면 아직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 어떻게 면도칼로 시원하게 벅벅 깎는다지.”

어둑어둑해진 가게 한쪽에서 분홍색 수건을 널던 그의 아내가 수줍은 듯 묻는다. “김치가 맛있는데 오늘 저녁엔 자장 라면 먹을래요?”조금 유명해지긴 했지만 예순두 살 그 삶은 열여덟 그때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난로 연탄을 갈고. 물을 데우고. 검은 말 가죽에 면도날을 지친다. 이발소 삼색 회전등이 꼬리를 물며 돌듯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맴돌던 그 자리서.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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