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세상읽기] 가계빚의 딜레마

김종수 2011. 2. 1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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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종수]

김종수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개인부문 금융부채는 지난해 9월 현재 896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그동안의 증가 속도에 비추어 지난해 말 기준으론 900조원을 너끈히 넘어섰을 게 분명하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 가계빚 1000조원 시대가 열리는 것도 시간 문제다. 가계부채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분기당 평균 5조5000억원씩 늘어나다 부동산 값이 급등세를 보인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분기당 17조9000억원씩 큰 폭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런 증가세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에 잠깐 증가액이 줄어들었을 뿐 그 뒤로는 매분기 평균 16조원 가까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분기엔 19조2000억원이 늘어나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가계빚이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추월하다 보니 2009년 소득(개인가처분소득)에 대한 가계부채의 비율이 2000년(87.4%)보다 1.6배나 오른 143%에 달했다. 버는 돈보다 빌린 빚이 그만큼 더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부동산 버블이 컸던 영국(161%)이나 호주(155%)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128%)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값 하락과 그에 따른 부채상환으로 이 비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만 금융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가계빚이 이처럼 늘어난 이유는 두 가지다. 은행권에선 부동산 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고, 비은행권에선 저신용자들에 대한 신용대출이 급증했다. 기업들이 투자부진과 현금흐름 개선을 이유로 대출을 쓰지 않자 금융회사들이 자금운용의 활로를 가계대출에서 찾은 것이다. 은행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담보대출에 집중한 반면 비은행권 금융회사들은 담보가 없는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에 열을 올렸다.

 가계빚의 이례적인 증가는 당연히 부실화의 위험을 부른다.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갚아야 할 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것은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여기다 금리마저 오를 경우 가계의 이자부담이 배가되면서 가계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미 시장에선 추가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가계대출의 이자부담액이 늘어나는 것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제2금융권의 고금리대출을 쓰는 저신용자는 추가금리 부담이 곧바로 치명적인 부실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가계대출의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부동산 가격이다. 장기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택 가격이 급락할 조짐이 보이면 담보가치의 하락과 함께 부동산담보대출의 상환압력이 커진다. 또한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과도한 대출을 받은 경우 집값 하락과 금리 상승이 겹치면 이자 부담의 증가는 가계를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는 한계까지 몰아갈 우려가 크다. 자칫하면 주택투매와 가계파산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거론되던 이른바 가계발(家計發) 금융대란(金融大亂)이 현실화되는 시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부실화되는 과정과 똑같은 양상이다. 집값이 오를 동안은 웬만한 이자 부담도 능히 감당할 만했지만 집값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 이자 부담은 견딜 수 없는 무게로 가계를 덮쳐 결국은 가계파산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 금리인상이 겹치면 그 중압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이 같은 악재가 동시다발로 터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인상 요인이 여전하고 주택시장 또한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미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제 가계대출의 문제는 금리정책과 부동산정책, 심지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대란까지 연관된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 이들 변수 중 어느 것 하나만 삐끗해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위험이 다분하다. 따라서 그 해법 또한 난해하기 그지없다. 한편에선 부동산 값이 급락하지 않도록 시장을 안정시키고, 다른 한편에선 금리인상이 가계대출의 부실화를 촉발하거나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속도와 시기를 조절해야 한다. 고도의 정책 조합과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당장 가계부채가 더 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가계빚의 규모를 점차 줄여가야 한다. 동시에 가계대출의 만기 구조를 장기화하고, 이자부담이 큰 변동금리대출의 비중을 낮춰 금리인상에 따른 부실위험을 줄여나가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

▶김종수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ongskim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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