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에게 마음 뺏기는 30∼40대 이모팬들

박진희 입력 2011. 1. 19. 11:39 수정 2011. 1. 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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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가 왜 이러죠?"

'이모 팬카페' 앞다퉈 개설..수천명씩 가입

"삶의 활력소" "우울증도 스트레스도 사라져"

전문가들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모성애 탓"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신재우 기자 =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이명숙(48) 씨는 요즘 유천이 생각만 하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유천이 사진을 수시로 꺼내보고 인터넷 카페에 유천이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남긴다.

유천이는 이씨의 아들 이름이 아니다. 그룹 JYJ의 멤버이자 최근 드라마 성균관스캔들로 연기에도 도전한 연예인 박유천.

세 딸의 엄마인 이씨에게 지금까지 대중 스타는 관심 밖이었다. 20대 때 변진섭을 좀 좋아했던 것이 팬 전력의 전부.

그러던 그가 '성스'(성균관스캔들)에 빠지더니 급기야 유천이를 보고자 거리에까지 나섰다.

이씨는 "작년 12월30일 한 TV 연예프로그램에서 유천이가 출연하는 거리녹화가 있다기에 명동과 홍대를 헤맸었다"면서 "결국 5시간 만에 홍대의 한 노래방에서 나오는 유천이를 봤는데 너무 오랫동안 화면을 통해 봐서인지 연예인이 아니라 아들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천앓이'를 하는 30∼40대 여성은 이씨만이 아니다.

30대 이상의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박유천의 팬카페 '블레싱유천'에는 개설 넉 달 만에 5천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남편과 자녀 챙기는데도 정신없던 아줌마들이 생전 들어본 적도 없던 인터넷사이트 디씨인사이드의 드라마갤을 뒤지고, 식료품 값 상승에 한숨지으면서도 연예인 명의로 이뤄지는 기부에는 선뜻 지갑을 연다.

아줌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 이모 팬클럽 박유천ㆍ현빈에서 '절정'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에 출연한 탤런트 배용준에 대한 일본 중년여성들의 사랑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하고 그를 보기 위해 촬영장이나 사인회를 찾는 것은 10∼2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아줌마들의 팬 활동은 일본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인터넷에는 젊은 남자연예인을 위한 '이모ㆍ누나' 팬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유천을 비롯해 이민호, 장근석, 이승기, 비스트, 샤이니, 김재중, 박재범, 2PM 등이 동경의 대상이다.

현빈, 이준기 등은 아줌마용 팬카페가 따로 개설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별도로 만들어진 '누나' 코너에서 30∼40대 여성들의 왕성한 활동이 이뤄진다.

과거에도 남자연예인에 대한 중년여성들의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같은 팬덤으로 발전한 시초로는 영화 '왕의 남자'(2005년)에 출연한 이준기가 꼽힌다.

극중 여장남자로 출연한 이준기의 중성적인 매력에 매료된 아줌마 팬들이 대거 등장한 것.

비슷한 시기 가수 이승기가 '누난 내 여자'라고 외치며 누나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더니,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장근석,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 김현중 등이 아줌마들의 '타깃'이 되면서 더 이상 중년여성의 꽃미남 사랑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런 흐름을 대세로 굳힌 이들이 성균관스캔들의 박유천과 시크릿가든의 현빈.

인터넷 팬카페나 디씨인사이드의 드라마갤에는 "한 번도 연예인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는데 제가 왜 이러죠?. 00에게 푹 빠졌다"는 아줌마들의 고백이 넘쳐난다.

최근 발간한 시집 '아무 곳에도 없는 시간'에 박유천을 향한 헌시(獻詩) '고맙네 박유천'을 담아 화제가 된 유명은(50) 시인도 그런 경우다.

유씨는 "연예인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생전 처음 이런 경험을 한다"면서 "한참 정서적으로 좋지 않았을 때 성스를 보며 위안을 받아 내 마음을 담은 시를 하나 실어도 유천이에게 누가 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집에 담았다"고 말했다.

'고맙네 박유천'은 '고맙네, 박유천/ 이 나이에도 부끄럼 무릅쓰고/ 자네 미소에 발그레 수줍어진다네/ 고맙네 박유천/ 삭막했던 가슴에 봄 햇살 가득허이'로 마무리된다.

시크릿가든의 현빈에 대한 아줌마들의 애정공세도 만만치 않다.

주부 이승애(41) 씨는 "연말에 SBS연기대상에서 네티즌 인기투표를 하는데 가족들 아이디를 다 만들어서 현빈에게 투표했다"면서 "군대를 간다고 하는데 갈 수만 있다면 솔직히 내가 대신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주위에선 다소 주책없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들의 연예인 사랑은 대체로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원으로 기능 한다.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팬인 정운옥(45) 씨는 "제 나이 또래가 많이 겪는 갱년기 우울증 같은 것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면서 "팬 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혼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서적으로 메마르다고 느낄 때, 활발한 팬 활동은 마음을 환기하고 새로운 청량감을 불러 일으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그에게서 삶의 활력 얻는다

이런 아줌마들의 팬덤현상은 무엇보다 팍팍한 현실에 대한 지겨움, 청춘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천앓이' 중인 주부 이미영(43) 씨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지내면서 오랫동안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다 선준(박유천의 극중 이름)이라는 빛나는 청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꿈이 있었는데'라며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남자 연예인을 '이성'이라기 보다는 '젊은 시절'로 바라보는 것이다.

성균관스캔들에는 여러 꽃미남이 출연했지만 박유천이 특히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의 극중 캐릭터가 지금은 40대가 된 386세대들이 청춘에 갈망했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남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줌마 팬들의 어린 남자연예인 사랑을 확장된 모성애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아줌마 팬들이 처음에는 가슴을 설레 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 같으니 잘됐으면 좋겠다",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실제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 연예인은 대부분이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미소년 이미지다.

박유천의 팬이기도 한 심영섭 교수는 "남편에게 느낄 수 없는 설렘과 매혹, 훨씬 안전한 방식으로 연애 심리를 충족하고픈 마음과 더불어 왜 박유천이고, 이민호인가를 생각해보면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들이 타깃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30∼40대가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 팬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드라마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지금의 30∼40대는 10∼20대 때 서태지와 아이들 등을 통해 팬 문화를 주도했던 세대로, 선호하는 대상에게 호감을 표현하는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드라마의 주시청자층이 30∼40대 여성으로 굳어지면서 이들이 연예인에 대한 열성팬층으로 부상했다는 분석도 있다.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성균관스캔들의 시청자 구성비는 10대여성 (12.2%), 20대여성(12.2%), 30대여성(17.2%), 40대여성(16.4%) 등으로 30∼40대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10년 전인 2000년에 방송된 트렌디드라마 '가을동화'의 경우에는 10대여성(11.6%), 20대여성(16.0%), 30대여성(17.2%), 40대여성(9.4%) 등으로 20∼30대 여성이 주시청자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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