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혁신의 의자王

질랜드·홀랜드(미국 미시간)=배성규 기자 vegaa@chosun.com 2011. 1. 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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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업계의 애플' 허먼밀러社.. 워커 회장 "소비자 말 듣지말라"

1994년 미국에 괴상한 모양의 사무용 의자가 출시됐다. 시트와 등받이가 그물망으로 돼 있어 의자의 뼈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기업 임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죽 쿠션과 사치스러운 커버를 씌운 의자와는 180도 달랐다. 패션잡지 '에스콰이어(Esquire)'는 "의자라기보다는 의자를 찍은 엑스레이 같다"고 했고, 소비자들은 "이게 의자 맞느냐" "해골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첨단과학이 결집된 이 의자의 편리함에 점점 익숙해졌다.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 이상하고 싫다"에서 "아름다운 여성 같다"로 바뀌어 갔다. 말콤 글래드웰은 베스트셀러 ≪블링크≫에서 편견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 의자의 사례를 들었다. '에어론(Aeron)'이란 이름의 이 의자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600만개가 팔렸다.

이 의자를 만든 허먼밀러(Herman Miller) 사의 철학은 '정말 좋은 신발이란 그것을 신었을 때 신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여야 한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허먼밀러의 CEO인 브라이언 워커(Brian Walker) 회장은 에어론 의자를 디자인한 빌 스텀프의 이 말이야말로 허먼밀러가 의자를 통해서 무엇을 구현하려는지를 정확히 말해준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을 때 너무 편해서 앉아 있다는 것조차 잊을 만한 의자를 만들고자 합니다." 워커 회장은 북미 시장 최고 책임자와 최고재무담당자(CFO)를 거쳐 2004년 CEO가 됐다. 그는 49세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머리가 하얗게 세 있었다. 홍보 책임자인 마크 셔먼씨는 "CEO가 된 뒤 워낙 신경 쓸 게 많아져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초월적인 아이디어는 '아픔'을 공감하는 데서 비롯된다. 〈C7면 강신장 경영칼럼 참고〉 에어론 의자를 디자인한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은 사람들의 '앉는 아픔'에 주목했다. 기존 의자에 사용되는 쿠션은 열을 너무 많이 흡수한다. 그래서 쉬 더워진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자주 자세를 고쳐 앉는 이유는 좀 더 시원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에어론 의자는 몸에서 생기는 열을 그물망 형태의 의자가 방출해줘 더 시원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기자는 워커 회장을 만나기 전날 이 회사 근처 산장에서 묵었다. 객실은 작고 소박했지만, 호수가 보이는 식당에서 와규 스테이크와 연어, 와인을 곁들인 식사는 훌륭했다. 산장의 특징 중 하나는 가구 대부분이 허먼밀러 것이라는 점이다. 허먼밀러가 소유한 일종의 영빈관이자, 제품 체험관이다. 산장의 원소유주 딸의 이름을 따서 메리골드 산장이라고 부른다. 워커 회장은 "어제 메리골드는 어땠느냐"며 인사처럼 물었다.

남들처럼 평범해지고 싶다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면 돼

대신 주도적 역할 할 수 없어

전세계서 600만개 팔린 '에어론'

처음엔 "이게 의자 맞나" 반응

디자인 경영으로 성공시대 열어

기자가 비행기를 두 번 타고 거의 하루를 꼬박 걸려서 질랜드까지 찾아간 이유는 허먼밀러가 단순한 가구회사 이상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혁신을 실천한다. 로저 마틴(Martin) 토론토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서 디자인 경영의 성공 사례로 이 회사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보면 애플이나 다이슨 같은 혁신기업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를테면 이 회사는 소비자조사를 하지 않는다. 워커 회장은 "소비자조사의 문제점은 소비자는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대답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다면 실패하지 않고 평범한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렇게 하면 혁신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 채 남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을 똑같이 답습하게 될 겁니다."

그는 팩시밀리의 예를 들었다. 팩시밀리를 처음 개발할 때 개발자들이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문서를 즉시 보낼 수 있고, 편지도 즉시 받을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좋겠습니까?" 모두들 이렇게 답했다. "이틀 정도면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돈을 더 들여서 그렇게 해야 하죠? 그리고 그런 기계가 없는 친구와는 어떻게 편지를 주고받으란 말이죠?"

허먼밀러는 디자인을 경영의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도 애플이나 다이슨과 비슷하다. 에어론 의자를 처음 출시할 때 마케팅 부서의 반발이 심했다. "디자인을 고치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고(故)D.J. 디프리(De Pree)는 디자인 담당 수석부사장에게 "마케팅팀의 반응이 어떠냐"고 물었다. 부사장은 태연히 "그건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디프리는 "맞아요. 마케팅 담당자에게 디자인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죠"라고 맞장구쳤다. 허먼밀러는 이 디자인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전략 상품으로 밀고 나갔다.

이 회사는 새 프로젝트를 할 때 외부 디자이너에게 맡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에어론 의자도 그랬다. 요즘 경영계의 화두인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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