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성, 지속성의 삼인행 - 이호철, 이승우, 박민규

2010. 12.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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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윤식의 문학산책

<일큐팔사>(1Q84)의 작가는 묘비명을 자기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했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왜냐면 그는 러너였으니까. 42.195㎞를 완주하기. 너무 빨리 달리면 위험하며, 그 반대면 등수에 들 수 없는 법. 아마도 작가란 자질의 문제. 타고난 것이기에 속수무책인 것.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집중력과 지속성뿐. 이 둘은, 이리 따져도 저리 비틀어도, 육체의 근력에서 오는 것. 이 둘은 결코 재능의 대용품일 수 없기에 어떻게든 견뎌나갈 수밖에. 그럴라치면 자신 속에 아주 깊숙이 잠들어 있는 비밀의 수맥과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는 법. 이런 행운이란, 거듭 말해, 근력의 힘에서 온 것이 아닐 수 없소.

눈여겨보면 우리 문단에도 이런 행운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지 않았을까. 2011년도 대입 수능시험 언어 영역을 보셨는가. "형은 울었다. 밤이 깊도록 어머니까지 불러가며 소리 내어 울었다"로 시작되는 소설 한 대목이 나와 있소. 이호철의 출세작 <나상>(1955). 북한군의 포로가 된 형제가 있었소. 형은 조금 모자라는 위인. 그러니까 벌거숭이 인간이 외부의 폭력에 희생되는 모습을 그린 것. 씨의 출발점은 <나상>과 함께 <탈향>(1955)이었소. 19살의 원산중학생인 씨가 단신 월남한 것은 1951년 1월 초. 체호프 소설을 몸에 지니고 부두 노동으로 전전하며 <나상>을 썼고 <판문점>(1961), <남녘사람, 북녁사람>(1996) 등을 썼소. 이 모두는 오직 분단문학이라는 한마디로 말해지는 것. 씨는 이 주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소. 이 지속성은 <오돌 할멈 손자 오돌이>(2009), <아버지를 찾아내라>(2010)에로 뻗어 있지 않겠는가. 이 지속성, 이 집중성은 어디서 왔는가. 근력 운동이 그 정답. 그 근력의 힘이 재능에 닿은 그런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행운이 어찌 이호철 한 사람뿐이랴. 금년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칼>(2010)의 작가 이승우씨를 대번에 들 수 있소. 출발점 <에리직톤의 초상>(1981) 이래 씨의 소설적 소재와 그 운용 방식은 분단 문제라든가, 전짓불 아래의 딜레마도 자생적 운명도 아니었고, 더구나 마음의 흐름 따위와도 무관한 것. 바로 관념이었소. 인간이기에 고유하게 갖고 있는 이 야생 당나귀같이 힘센 관념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문학에서는 제일 결여된 부분. 곧 그것은 고대 해적들이 쓰던 단검이 아닐 수 없는 것. 이 예리한 단도에 대한 매력이야말로 씨의 집중성과 지속성의 원천이었던 것. 씨의 글이 서구어로 번역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서 오는 것. 샤머니즘처럼 엉겨 붙지 않으니까.

<아침의 문>(2010), <끝까지 이럴래?>(2010)의 작가 박민규씨는 어떠할까. 지난해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인 씨는 수상의 자리에 복면을 쓰고 나타났고, 금년 이상 문학상 시상식엔 검은색 안경으로 낯을 가리고 있었소. 이 기묘한 행태는 데뷔작 <지구영웅전설>(2003)에서부터 드러났던 것. 씨는 우주인이었으니까. 씨가 선 땅이란 그냥 지구일 뿐. 미국도 중국도 파리도 모스크바도 없다, 달에도 갈 수 있고 별에도 갈 것이다, 거기서도 어김없이 미국의 자동차 세일즈맨을 만날 것이다. <끝까지 이럴래?> 끝까지 이럴 수밖에. <자서전은 얼어 죽을>이랄밖에. 이 집중성, 지속성이 문득 빛난다 하면 조금 과장일까.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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