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명칼럼]목욕탕과 화장실

김영명|한림대 교수·정치학 2010. 11.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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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많이 컸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어른들 사이에 '엽전이 별 수 있나' '이민이나 가 버릴까' 하는 자조가 가득 차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소리들이 듣기 싫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엉터리고 무질서하고 대충대충이고 시간 약속도 지킬 줄 모른다는 비난과 조소가, 특히 한국인들 자신에게 만연해 있었다.

때수건이 널브러져 있는 목욕탕

그러더니 어느새 대한민국은 세계가 칭송하는 훌륭한 나라가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나친 사교육의 병폐를 잘 아는 우리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한다.

1993년 1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뻥 뚫린 고속도로와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도쿄나 그 주변의 다닥다닥한 옛건물들에 비해 훨씬 더 현대적인 것을 보고, "야, 한국이 정말 발전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은 아직도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 지구의 한쪽 구석에 붙은 낯선 나라이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옛날처럼 그렇게 우습게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때의 감탄은 곧바로 탄식으로 이어졌다. 그 멋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요금소가 나오는데 거기서 받은 영수증들이 바로 길에 버려져 요금소 주변이 휴지통같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직은 멀었군…." 게다가 그 멋진 현대 건축물들이 결국 전통과 옛것을 무분별하게 없애 우리를 과거가 없는 족속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도 얼마 안 가 깨닫게 되었다.

비슷한 느낌을 요즘 대중목욕탕에서 갖게 된다. 종종 운동하고 목욕탕엘 가곤 하는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아저씨들의 행태를 본다. 아니, 그 행태의 결과를 본다. 때수건을 쓰고는 수거통에 넣지 않고 그대로 샤워꼭지에 걸어두거나 바닥에 떨어뜨려 놓는다. 아마 종업원이 치우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종업원은 기대만큼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내가 몇 개 치우다가 왠지 좀생이 할아버지가 되는 것 같아 그만둔다. 교수휴게실에서 신문을 펼쳐보고는 다시 접지 않고 그대로 놓고 가는 교수도 없지 않다. 누구보고 접으라는 건지….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갈 때 불편한 적이 자주 있다. 제복 입은 아줌마들이 대걸레를 밀면서 이리저리 다닌다. 일을 보려고 바지 지퍼 내리기가 영 찜찜하다. 남자 화장실에 왜 여자들이 들락거리나? 남자들은 인권도 없나? 화장실 청소 따위는 남자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일까? 또는, 그 아줌마들은 여자도 아니라서 남자 화장실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오히려 여성 인권 비하가 아닌가? 내게는 그들이 분명히 여자다.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점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런 현상들이 아직도 우리나라가 충분히 선진화되지 않은 증거라 생각한다. 예전에 횡행하던 새치기라든가 기차 연발착 등은 대부분 없어졌다.

사람들의 의식도 개선되었고 제도와 기술도 발전하여 세계 선두에 선 분야들이 적지 않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감탄하는 것이 고속철도의 정확한 시간 지키기라는 사실을 알려준 신문 칼럼을 본 적도 있다. 인천공항도 몇 년째 세계 평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번호표를 이용한 은행 업무나 병원의 쾌적한 줄서기 역시 세계 제일이 아닐까 한다.

남자화장실에 아줌마 청소원들

공중화장실의 깨끗함도 자랑스럽다. 그런데 그 화장실에 동성 아닌 이성이 들락거린다.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목욕탕에는 때수건이 널브러져 있다. 거창한 데서만 선진화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조그만 것에 신경을 더 써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거꾸로 우리가 선진화되어야 이런 조그만 것들이 고쳐질까? (사족)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우리가 아직 덜 크긴 덜 컸나 보다.

< 김영명|한림대 교수·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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