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재 500억원 기부한 배우 신영균

2010. 10. 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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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영화인의 꿈..영화인 위해 쓴다면 보람"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기부하려면 애착 있는 걸로 해야지 아무 건물이나 하면 뜻이 없잖아요. 영화인이니까 건물을 영화인을 위해 쓴다면 보람이 있겠어요."

원로배우 신영균(82)이 문화예술계에 기부하기로 한 중구 초동 명보아트홀(옛 명보극장)과 제주도의 신영영화박물관은 가치가 500억원 가량으로 영화계에서 나온 기부액으로는 가장 크다.

특히 명보극장은 충무로의 전성기를 이끈 중심 극장이었다는 상징성이 있다.

신영균은 5일 명보아트홀에서 사재 기부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을 따로 만났다.

"극장은 영화인들의 큰 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빨간 마후라'도 다 여기서 했어요. 돈을 떠나서 애착이 있는 건물입니다."

멀티플렉스 시대를 맞아 스카라극장 등 주변 극장들은 다 헐리면서 옛 모습이 사라졌다. 명보극장도 명보아트홀로 바뀌면서 영화가 아닌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그는 "옛날엔 명보극장 하면 제일 잘되는 극장이었는데 요즘 극장 문화가 바뀌었다"면서 "이 건물을 영화관으로 다시 할 수 있으면 해볼까 하고 생각하고도 있지만 그건 재단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건물이 시가로 치면 액수가 많은데 팔기보다는 이걸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희극인 김희갑이 출연하는 영화를 직접 제작했는데 개봉관을 잡을 수 없어 고생했다는 일화를 공개하면서 그때부터 극장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말했다.

30여년 전 명보극장을 인수하기 전에는 극장 옆에서 부인 김선희씨가 명보제과를 꾸려갔다고 했다.

그는 "빵집이 아주 잘 됐다. 우린 검소하게 산다고 명보제과 3층에서 생활했다"면서 "집사람이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신영균은 기부를 생각한 것은 오래됐으며 특히 팔순에 접어들면서 "마지막으로 크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서 "나이가 있는데 미리미리 해놓고 인생을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을 탄 '상록수'와 '빨간 마후라', 흥행 성적이 좋았던 '미워도 다시 한번'을 들었다.

그는 치과의사로 개업까지 했다가 영화배우가 됐다. 이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치과대에서 공부한 것도 근 10년이고 예총 회장도 근 10년 했어요. 국회의원도 8년 했는데 영화배우를 한 20년 했으니 제일 오래 했죠."

신영균은 '과부'(1960)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970년대말까지 '연산군'(1961), '상록수'(1961), '열녀문(1962), '빨간 마후라'(1964), '갯마을'(1965) 등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3차례에 걸쳐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대종상 공로상,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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