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짜리 답안지를 환영" 빵점학교

입력 2010. 10. 3. 16:47 수정 2010. 10. 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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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사범대 학생들이 방학에 여는 대안학교---1대1 지도, 17년째 열려

"학생들의 건전한 심신 발달을 위해 실시하는 장기간의 휴가".

국어사전에 방학은 이렇게 정의돼 있다. 하지만 이 사전적 정의와 현실은 사뭇 다르다. 방학 때 놀기만 한 사람은 자칭타칭 '잉여인간'이 될 정도니, 오히려 방학이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려 아등바등 애쓰는 시간이라는 설명이 더 맞는 것 같다. 시험과 각종 공모전 준비, 외국어 공부 계획으로 빡빡이 채워진 방학은 '부지런한 대학생의 미덕'이 됐다. 교복 입은 학생은 어떤가. 학교의 부재를 학원수업으로 채우는 중고등학생의 방학은 정규학기보다 더 치열하다.

이 때, 한 학교의 학생들이 특별한 방학을 보냈다. 무더웠던 7월, 성균관대 사범대 학생들이 < 빵점학교 > 를 열었다. 만점을 맞으라고 촉구하는 사회에서 "빵점"학교라니?

< 빵점학교 > 는 1994년부터 17년째 성균관대 사범대 학생회에서 개최하는 '반(半)'대안학교다. 학생회가 주최가 되어 학교의 운영과 홍보 등을 기획하고, 활동을 자원한 사범대 재학생 100여명이 7월 한 달간 비지땀을 흘리며 예비교사로서 수업을 준비한다. 한 달의 준비기간 끝에 일주일 동안 수업을 연다. 매년 인근지역의 중학생 100여명이 함께하고 있다. 인상적인 학교명 < 빵점학교 > 는 이 학교가 지향하는 '반(反)입시위주'에서 유래했다. 입시위주의 실재 교육 현장에서는 '0점'일 수밖에 없는 답안지를 이곳에서는 환영한다는 뜻이다.

빵점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

사범대 전공과목 중 국어•수학•컴퓨터•한자 4개를 빵점학교에서 가르친다. '느끼고 즐기는 시간'이라는 목표 아래 수업 내용이 가지각색이다. 올해는 국어 수업 '낯설게 하기: 색다른 시각으로 시 바라보기', 수학 수업 '하노이의 탑'•'복면산: Talk, Love, play', 컴퓨터 수업 '웹툰 만들기', 한문 수업 '옥편 찾기'•'고사성어 연극'이 개설됐다. 각 과목마다 담당교사 2-3인이 수업을 진행하며 보조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습을 개별적으로 돕는다. 교사와 학생의 비율은 1:1이다. 교사 1인이 학생 개개인에게 보다 관심을 갖고, 개인 차를 고려한 개별적인 학습과 놀이 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다.

교사들도 학생들과 함께 배운다는 점이 특이하다. 다른 과목 교사들도 자기 학과가 아닌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다. 한성여중 3학년 노시은(15)양은 "학교에서는 선생님 혼자 수업을 하시는데, 여기서는 다른 과 선생님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발표도 해서 정말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노 양은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는 점이 빵점학교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일로 꼽았다. 교사로 활동한 성균관대 2학년 강원배(20•교육학과)씨는 "아이들이 지식 전달보다도 애정과 관심을 더욱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날에는 거리를 두고 소극적이었던 아이들과 점점 가까워질 때 교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교사-학생 간 친밀한 접촉이 가능한 빵점 학교에 애정을 나타냈다.

월부터 금까지 5일간 진행되는 학교 일정에는 교과 말고도 놀이 수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 수업은 매년 다르게 설정되는 그 해의 슬로건에 맞춰 기획한다. 2010년 17회 빵점학교의 슬로건은 '우리가 함께하는 꿈 찾기 여행'이었다.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는 학생들에게, 꿈과 목표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고 진지한 고민을 할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 학습을 통해 참여를 자극한다. 이외에도 아이들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한 티 만들기, 체육대회 등이 진행된다. 학원 가기가 싫어서 자원했다고 고백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던 신일중 3학년 김은성(15)군은 "의외의 친구들을 새로 사귀고 함께 소중한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어 보였다.

빵점학교의 시간표.

아이들 뿐 아니라 예비 교사들에게도 소중한 경험

빵점 학교는 학생들뿐 아니라 예비 교사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된다. 한 달이 채 못 되는 교생 실습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현장 경험을 아이들과 직접 접촉하며 쌓을 수 있다. 작년 대학교 새내기시절 여름방학의 빵점학교 일반교사로 활동한 강원배 씨. 올해 1반 담임교사를 맡았다. 스펙 쌓기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풍토와는 다르게 방학 한달을 빵점학교 준비에 쏟은 것이 대단하다는 말에 강 씨는 "빵점학교는 시간대비 성취감이 최고에요. 다른 스펙은 긴 시간을 투자해도 '이게 과연 유의미한가' 하는 회의가 드는데, 빵점학교는 한달 간의 집중투자로 제가 쑥쑥 큰 걸 바로 느낄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빵점학교와 퍽 다른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빵점학교는 일대일 수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말 이상적이죠. 하지만 현실화하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빵점학교는 일면 '위험한 도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답했다. 빵점학교 교사로 활동하면 학교로부터 교육봉사 40시간을 인정받는다.

수업시간에 만든 티셔츠를 들고 있는 교사들.

올해 빵점학교 교장인 사범대 학생회장 송효인 씨(24,교육학과)는 3년째 빵점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장기 멤버다. 그녀는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4학년. 임용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다른 졸업반 학생들보다는 위기감을 덜 느낀다면서 "좋은 교사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선생님이라는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경험해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데요. 아이들과 이런 이상적인 환경에서 소통한 경험이 앞으로의 교직 생활에 좋은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꿈은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이유'를 알고 저절로 학습욕구가 끓어올라, 너도나도 즐겁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공부는 목적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날의 교실에서는 '빵점 짜리'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 이런 교육공간을 꿈꾸고 실제로 경험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진다면, 빵점학교 교사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학교'는 더 이상 '위험한 도전'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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