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서걱거리는 첫사랑이 있나요

2010. 9. 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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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첫사랑을 떠올린 적이 있는가. 굳이 지금 사랑에 불만이 없더라도 누구나 한두번쯤 그럴 법하다. 지금 그 여자, 또는 그 남자는 누구를 만나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까. 혹은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불만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새달 7일 개봉하는 <레터스 투 줄리엣>은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세대초월 두여인과 한남자가50년전 사랑의 향기 찾는 여정세월이 변주한 커플들의 모습주옥같은 대사가 영화의 백미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다는 도시 베로나.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에 있는 중세풍의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곳이다. 줄리엣이 살았다는 옛집에는 연인의 절절한 눈빛이 오갔을 발코니가 있다. 그곳 줄리엣 동상의 가슴은 한번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로 반질반질하고, 발코니 아래 벽에는 비밀스런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들의 편지로 빼곡하다. 베로나시 공무원으로 이뤄진 '줄리엣의 비서들'이 그에 대한 답장을 해주는데, 한해 5000통이 넘는다고 한다.

<뉴요커> 잡지사 조사직원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약혼자와 함께 베로나로 예비 신혼여행을 간다. 요리사인 약혼자는 소피는 뒷전인 채 이탈리아 요리수업에 바쁘다. 하릴없어진 소피는 베로나 시가지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줄리엣의 집에 들르게 되고 줄리엣의 임시비서가 된다. 하루이틀 편지를 수확하다가 벽돌 속에 숨겨진 채 잊혀졌던 50년 전 편지 한통을 발견한다. 이탈리아에 공부하러 왔다가 하숙집 아들과 사랑에 빠진 영국 소녀의 편지다. 함께 떠나자고 약속해 놓고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고민을 줄리엣한테 털어놓는 내용이다.

소피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겉봉에 쓰인 주소로 답장을 하는데, 웬걸, 며칠 뒤 편지의 수신인이 덜컥 찾아온다. 우아하게 늙은 70대 과부 클레어(버네사 레드그레이브)다. 무뚝뚝한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를 앞세우고 나타난 그는 50년 전 첫사랑 로렌조를 찾아내 당시 겁내고 도망갔던 것을 직접 사과하겠다는 거다. 사건의 실마리가 된 소피는 책임감에 안내자를 자청해 피렌체 남쪽의 시에나에 산다는 로렌조 찾기에 나선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지만 조사직 실력을 발휘한다.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낸 그 나이대 로렌조는 모두 74명. 일일이 한명 한명 방문하는데, 그 로렌조들은 이러하다. 저놈의 영감탱이 당장 데려가라고 외치는 아내를 둔, 요트 사공으로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당신의 로렌조를 못 찾으면 자기한테 오라는,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오늘내일 하는, 며칠 전 죽어 무덤의 흙이 채 마르지 않은 등등.

영화는 감성 로맨스답게 있을 법하지 않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결말이야 어쨌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졌을 터이지만, 50년 뒤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 커플들의 코믹스런 양태에 눈길이 머문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에서 온 방문자 클레어와 뭘 모르는 작가 지망생의 눈에 비친 모습일 따름. 내밀한 진실은 당사자와 관객의 몫이다. 젊은 소피와 찰리 사이에서 모양을 갖춰가는 사랑과 그와 비슷했을 클레어-로렌조 사랑의 50년 뒤 결과가 겹치면서 사랑의 본질과 현상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대화가 가히 금언급이다. "헤어져 있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니, 그럼 안 되는 거잖아. 언제나 함께하고 싶어야지."(소피가 요리에 더 매료된 약혼자한테 결별을 선언하면서)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없소."(진짜 로렌조가 50년 뒤에 자신을 찾아온 클레어한테) "많고 많은 소피네 집 문 두드리고 싶니? 나처럼 50년을 기다리지 마라."(클레어가 소피한테 호감을 가진 손자한테)

무엇보다 소피가 클레어한테 쓴 편지가 심금을 울린다.

"어려운 결정 앞에선 누구나 두렵지만 그 두려움에 갇혀 소중한 걸 놓치면 그게 평생 마음의 짐이 되죠. 안 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후회하면 어쩌지? 그 옛날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몰라도 그게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그때의 진실은 영원한 진실이니까요."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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