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원 감독대행 없었으면 고대 우승도 없었다"
[JES 이정찬]
대구대 4번째 키커로 나선 정지안의 슈팅이 고려대 골키퍼 노동건에게 막히는 순간. 벤치에 앉아 차마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서동원 고려대 감독대행은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우승은 그만큼이나 간절했다.
고려대가 14일 남해스포츠파크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 11회 대학축구대회 대구대와 결승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4-2) 끝에 우승했다. 2004년부터 5년 연속 이 대회 정상에 섰던 고려대는 2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르며 대학축구대회에서만 7번째 우승컵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기장에는 120분 내내 서 감독대행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다같이 싸워줘야해. 힘내자." 이틀 간격으로 경기를 치러온 그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고려대 주장 이용은 "서샘(서 선생님)이 없었다면 우승도 없었다. 늘 친형처럼 선수들을 보살펴 주시고 경기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지도하신다"며 공을 돌렸다. 서 감독대행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내가 겪은 아픔을 내 후배, 동생들이 겪지 않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청소년대표 까지만해도 그는 촉망받는 공격수였다. 1991년 포르투갈 20세 이하 청소년 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코리아'를 8강에 이끄는 등 한국축구의 차세대 주역으로 꼽혔다. 그러나 선수생활은 길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중동고-고려대를 거쳐 1995년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포항에 입단할 예정이었던 그는 그 해 11월 '신장염 파동'에 휘말리며 선수생활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긴 방황 끝에 독일 분데스리가 3부리그에 진출했다 포항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예전의 기량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2003년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곧 '이론과 실재를 겸비한 젊은 코치'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모교인 고려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고려대는 지난해 말 전임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 감독대행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감독 선임 문제로 동계 훈련을 예년에 비해 한 달이나 덜했고, 박희성 등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올림픽팀과 청소년대표팀을 오가는 악조건 속에서도 고려대가 우승할 수 있었던 데는 서 감독대행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다.
서 감독대행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축구를 사랑하며 살아온 덕분에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후배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남해=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사진제공=대학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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