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의 천사' 메리 시콜, 나이팅게일에 가려졌던 이유는? '인종차별'

2010. 7. 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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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백지현 기자]잘 알려진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뒤에는 숨겨진 또다른 천사가 있었다.7월 4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두여자'라는 주제로 나이팅게일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백의의 천사' 메리 시콜의 삶에 대해 소개했다.

2000년 경, 영국 런던의 한 액자가게에서는 한 손님이 액자 속 그림을 교체하기 위해 왔다가 액자 속 보호지의 초상화를 발견하게 됐다. 이후 그는 전문가에게 의뢰, 이 초상화 속 60대 흑인여성이 1869년 알버트 찰스 챌렌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특이한 점은 흑인여성이 왼쪽 가슴에 세개의 훈장을 달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사결과 초상화 속 모델은 '검은 나이팅게일'이라고도 불리는 진정한 '백의의 천사'로 그녀의 이름은 메리 시콜. 영국 군인들에게 '어머니'라고 불린 인물이었다.

그녀는 1805년 스코틀랜드 아버지와 자메이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 여성으로 노예취급을 받아야했다. 약초 약품에 지식이 많아 마을 사람들에게 질병을 치료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그녀는 성인이 된 후 백인 호레이쇼 시콜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일찍 요절했다. 이후 시콜은 의학지식을 쌓는 데 매진한 후 자메이카 군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1863년, 크림전쟁 발발 후 부상병이 속출했으며 영국에서는 간호사 모집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시콜 역시 영국으로 건너가 간호단에 지원했으나 빈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당시 일손이 부족했던 영국이었지만 식민지 자메이카 출신의 시콜을 고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망연자실한 시콜은 결국 다들 가기 꺼려하는 최전방에 직접 치료소를 차려 부상과 감염으로 사망하는 병사들을 위해 치료법을 개발하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수많은 병사들을 돌본 그녀에게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역시 매일 병사들을 돌봤고 당시 그녀가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이유는 그녀가 영국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식교육을 받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크림전쟁 이전, 간호사가 불결하고 잔인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나이팅게일을 통해 간호사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했던 것이다. 결국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어머니한테 병 치료법을 배워 스스로 터득한 메리 시콜은 나이팅게일에 가려져야만 했다.

그러나 시콜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 건강해진 병사들 만큼은 그녀를 매일 찾아가 노후를 돌봤으며 종전 후 메리 시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초상화가 나오게 된 것. 세개의 훈장은 영국과 연합국 국가들 프랑스, 터키에서 추천을 받아 그녀에게 수여한 훈장이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나이팅게일에 묻힐 수 밖에 없었던 메리 시콜의 사연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다시한번 일깨워줬다.

백지현 rubybaik@newsen.com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m)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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