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열쇠를 받았습니다, 근데 낯선 이 기분은..

2010. 6.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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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송성영 기자]

낯설기만한 열쇠를 받았습니다.

ⓒ 송성영

내부 단열작업을 마친 목수들은 석고 보드로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목수들의 할 일이 이틀 후면 마감됩니다. 장판과 도배는 따로 업자들을 불러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본래 장판과 도배 작업을 우리부부가 직접 하려고 했었는데 윤구씨가 잘 지어 놓은 집 버린다고 극구 만류했습니다.

"형님, 그거 생각 보다 쉽지 않아요. 인건비 들더라도 전문가가 해야 해요. 전문가들이 하면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데 두 분이 하려면 몇 날 며칠을 해야 하고, 몸도 상하고, 집도 버려요." "인효 아빠, 윤구씨 말대로 그냥 맡기자 시골집 팔았으니까 그 돈으로 하면 되잖아. 천장이 높아서 쉽지 않을 거 같어." 직접 집을 지어보겠다고 작정한 것이 불과 3개월도 채 안 됐는데 도배 장판까지 다른 사람의 손에 의지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날 밤 몸이 피곤해 눈이 감겨왔습니다. 목수들이 석고보드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내내 집 주변의 칡넝쿨이며 쑥대를 잘라내고 무성한 풀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꿈자리가 시끄러웠습니다. 방송국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뭔가를 놓고 그런 식으로 하려면 방송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에 맞서 거지처럼 어디 가서 얻어먹을 궁리나 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방송 일을 하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촬영현장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어디 가서 공짜 밥이나 사과 상자 같은 선물꾸러미를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일거리를 놓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 길래 얼마 전 그와 대판 싸움을 벌였고 방송 일을 접어야 하나 마나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집을 완성해 가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점점 고민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방송 원고료는 그나마 생활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걸 접어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의 고민 보다는 아내의 반응이 더 두려웠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일하기 싫다고 그만 둔다는 것은 아내에게 용납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생활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려워 할 것이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또다시 티격태격 다투게 될 것은 불 보듯 빤했습니다. 사실 싸우기로 말하자면 그 사람과 싸워야지, 아내와 싸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다시 집짓는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수들은 집안에서 석고 보드를 잘라 붙이는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밖에서 윤구씨의 마저 못한 물받이 작업을 거들고 있는데 서군섭 선생 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일하는데 밥 한 끼 대접도 못하고, 목수들과 함께 오시요이." 점심 식사를 준비해 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앞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나 새 터를 소개시켜 줬던 서군섭 선생 부부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면부지의 고흥 땅에서 우리 식구의 의지처가 되주고 있었습니다. 낯선 동네에서 까다롭지 않게 농지원부를 만드는데 큰 힘이 돼주었고 임시거처인 달세방도 소개시켜 줬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뭔가 도움 주고 싶어 하는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성격 소탈한 서군섭 선생의 부인이 준비한 점심 식사는 잔치상 만큼이나 푸짐했습니다. 여기가 음식 인심 좋은 전라도구나 실감할 정도의 밥상을 받아 모두가 든든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집짓는 현장으로 나서는데 이번에는 새 터 앞 집 박씨아저씨네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녁은 우리집에서 같이 합시다." "고마운 말씀인디, 저녁은 집 사람이 준비하기로 했는디요..." "그럼 오늘밤은 식구들 데리고 우리 집에서 자소." 아내는 새 터에 머물면서 목수들에게 사흘 내내 아침과 저녁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수저에 밥그릇이며 냄비, 프라이팬 등 사글세방 할머니네 살림도구를 동원해 생선을 굽고 동태찌개를 끓이고 돼지고기 불고기 등으로 나름 든든한 밥상을 마련해 왔습니다.

그날 오후 드디어 석고보드로 내부 마감 작업을 마치면서 목수들의 할 일이 끝났습니다. 기초공사에서부터 시작한 집짓기 기간은 한 달 열흘 정도였지만 중간 중간에 휴가를 다녀오거나 하여 일한 기간은 한 달하고 사나흘 정도. 도배와 장판 화장실 등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마무리 했던 것입니다.

목수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늦은 저녁에 떠나는 사람도 있고 다음날 새벽 떠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저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내는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왔어요. 내 집이니 생각하시고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민박집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아무 부담 없이 내 집이라 생각하세요. 방이 적으면 안방이라도 내줄테니까요." 목수들이 떠나기 전에 나머지 인건비를 챙겨줬습니다. 이미 기초공사를 시작하면서 선금으로 3분의 1를 지급했습니다. 목수들의 팀장인 윤구씨는 공사비가 부족하면 인건비는 일부만 주고 천천히 갚으라 했지만 공사비가 부족해 집을 짓다가 멈추더라도 인건비는 반드시 지급하겠다고 약속 했었습니다. 하여 인건비만큼은 따로 책정해 두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인간만큼 파렴치한 인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약속한 인건비를 모두 지불하고 나니 집 짓는데 더 이상 걱정거리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잖아도 스스로 인건비를 낮게 책정했던 윤구씨에게 내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인건비를 다 내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마치 내가 일하고 나서 인건비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장실 마감 작업은 제가 해 드릴께요." 집 짓고 나서 집주들로부터 인건비 때문에 종종 애를 먹곤 한다는 윤구씨가 기분 좋게 말했습니다. 윤구씨는 목수 일이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휴가를 다녀와서 화장실의 세면대, 변기 등을 설치하고 또 나중에 짬이 나면 보일러실이 비 맞지 않도록 창고 짓는 일까지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결국 또 다른 빚을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은 앞 집 박씨 아저씨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우리식구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그는 위스키인가? 보드카인가라는 칵테일을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산간오지 바닷가 외딴 집에서 홀로 지내면서 외로움보다는 두려움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만일에 대비해서 가스총까지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잖소. " 공주에서 생활했을 때 우리 집에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도 가져 갈만한 것이 없어 자물쇠는 물론이고 대문도 없이 살았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박씨 아저씨네 집은 창을 두 개로 설치한 이중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람 한 줄기 들어올 틈도 없어 보이는 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루 종일 보일러를 돌리고 있었기에 공기가 답답했습니다. 술 한 잔 마시고나니 더욱더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고맙게도 방을 두 개씩이나 내 줬지만 아이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베개를 들고 아내와 함께 쓰고 있는 옆방을 오락가락했습니다.

"아이구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숨이 막혀 죽겠어." "엄마 아빠 방도 마찬가지니께 창문 열어놓고 자." "창문이 안 열려. 보일러 끄라고 하면 안 되나?" "아저씨네 주무시잖어. 그냥 참고 자자." "아휴 갑갑해." 우리 집 아이들은 두세 살 무렵부터 문풍지 사이로 윗풍이 솔솔 들어오는 공주 시골집에서 10여년을 살아왔던 녀석들입니다. 나와 더불어 아파트에서 이틀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시골 촌놈들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아내는 뜨거운 방바닥에 등허리 지지는 기분으로 '어 시원하다'며 잠만 잘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녀석들이 여전히 퀭한 두 눈을 멀뚱멀뚱 거리고 있었습니다."아침 해 보려고 새벽에 바닷가에 나가 자갈밭에 누워 있다가 왔어." "근디 니들 한 숨도 못 잔 겨?" "응 갑갑해서." "밤새 뭐 한 겨?" "둘이 앉아서 명상 했어." "명상? 뭔 명상?" "아빠가 우리 어렸을 때 새벽 산책길에서 자주 물어 봤잖어, 그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서로 얘기해 봤어." 녀석들은 가부좌까지 틀고 마주앉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풀어 보았다고 합니다. 일테면 화두를 튼 것이지요. 얼마 전 컴퓨터 고장 사건으로 집 짓는 현장에 유배를 왔던 녀석이 선사가 뭐며 명상이 뭔가를 꼬치꼬치 캐물어 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 걸 끈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그래 니들이 누구디?" "끝까지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었어." "야! 대단한데!" 열 다 섯, 열여섯 연년생인 두 녀석들은 도반처럼 마주앉아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파고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라는 존재를 핏줄에서 찾아 봤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아버지에 아버지,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서 나왔는데 그 위에까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 보니 결국은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있으니까 좀 무서웠어.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을 있으니까 초원이 보이더라고 거기에 사자가 있었는데 하나도 안 무섭고 그냥 편하더라구." 녀석들은 그 어떤 두려움이든 자신들이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들은 그날 아침 해를 기다리며 바닷가 자갈밭에 나란히 누워 무엇을 보았을까? 바다를 보았을 것이었습니다. 바다를 보다가 결국 무의식 결에 아무것도 아닌 바다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다를 통해 그 어떤 내면 깊숙이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녀석들은 살아가면서 또 다른 그 어떤 두려움과 수없이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두려움의 시간을 보낼 것이고 그 두려움에서 뭔가를 새롭게 깨달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깨우침을 통해 뭔가 생명력 있는 기운을 얻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기운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 겨,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만 너는 분명 그 안에 있잖어? 뭔 얘긴가 알것어?" "뭔가 알 거 같기도 혀." "결국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거지? 니들이 내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졌잖어. 본래 어둠도 아무것도 아니니께." "그러네." "그래서 옛 성인들이 내 자신을 알게 되면 자유로워 질수 있다고 했어, 당연히 두려움이 없으니 자유로울 수밖에 없지? 안 그려?" "그려." "세상일도 마찬가지여.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맞서야 겠지?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맞서지 못 하겠지? 그러다보면 결국 그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억압당하고 살게 될 것이고. 사실 아빠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아빠 역시 실천하기 쉽지 않은 얘기여. 아빠도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있으니께. 하지만 그런 마음을 늘 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 해야겠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까." "아빠, 형아는 참 희한해, 새벽에 아침 해 보러 가는데 머리를 감고 갔다니까." 아이들이 심각한 얘기를 꺼내자 이때다 싶어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데 늘 그래왔듯이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이 녀석이 판을 깼습니다.

어쨌든 그날 아침 사글세방에 가보니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널려 있던 짐 꾸러미들이 사라졌습니다. 한 달 넘게 숙식을 같이 했던 목수들이 방을 말끔하게 청소해 놓고 저마다 제 갈 길로 떠났던 것입니다. 윤구씨만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거 잘 챙기세요." 며칠 후에 다시 보자며 윤구씨가 건네준 것은 한 꾸러미의 집 열쇠 였습니다. 현관문, 뒷문 방문, 옆문 화장실 문까지 각각 세 개씩, 열쇠가 꽤 많았습니다. 그동안 시골생활을 하면서 열쇠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너무나 낯설고 당황스러워 주저하고 있는데 아내가 기분 좋게 받아 들었습니다.

"열쇠 없이 살아서 나도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있어야지." "누가 가져 갈 것도 없는데." "그래도." 윤구씨와 수일 내로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와 아내는 여기저기 열쇠를 꽂아 보았습니다.

"야 이제 진짜 우리 집 같다. 열쇠까지 생기고." 아내의 기분 좋은 표정을 보면서 다만 우리 식구 스스로가 그 열쇠에 갇혀 지내지 않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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