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남북문제는 내게 끊임없는 문학적 영감 제공"

2010. 6. 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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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독회 녹취록' 선유리' 출간2년간 '탈향'등 자신의 작품으로주민·작가 지망생들과 깊은 대화"재외동포 삶 다룬 소설집 낼 것"

2003년 9월 세계문학인대회 참석차 독일 베를린에 갔던 소설가 이호철(78)씨는 그곳의 소설 낭독회에 몇 차례 참석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입장료를 내고 행사를 보러 오는 이들이 특별한 문학애호가가 아닌 평범한 인근 주민이었고, 더구나 그들은 사전에 작품을 읽어와 작가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적극적으로 던졌다. 독일에 이어 들렀던 프랑스, 스페인에서도 이씨는 소설 낭독회가 일상적인 지역 문화행사로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소설 독회를 시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씨는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모(48)씨의 도움을 얻어 2006년 9월부터 경기 고양시 선유동 자신의 집필실 앞뜰에서 '문학 사중주'라는 이름의 소설 독회를 열기 시작했다.

독회에는 동네 주민, 작가 지망생 등을 주축으로 보통 30~40명, 많을 땐 70~80명이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이씨는 이들 앞에서 자선(自選) 작품을 낭독하고, 작품의 주제와 창작 배경, 작중 인물의 실제 모델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출판사나 대형 서점의 신간 홍보행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대부분의 문학 낭독회와 뚜렷이 구별되는, 진정성 있는 문학 행사였다.

이씨의 독회는 2008년 9월까지 2년 동안 24회에 걸쳐 진행됐다. 민병모씨가 대표로 있는 문학단체인 분단문학포럼은 독회의 전 과정을 녹화해 한 케이블방송을 통해 방영했다. 그리고 이번엔 그 녹취록인 <선유리>(미뉴엣 발행)를 출간했다. 부제는 '이호철 소설 독회록'.

책에서 다뤄진 소설은 이씨의 1955년 등단작인 단편 '탈향'부터, 출세작인 단편 '닳아지는 살들'(1963) '서울은 만원이다'(1966)와 장편 <소시민>(1964) 등을 거쳐,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연작소설집 <남녘 사람 북녘 사람>(1996)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 인생 55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망라돼 있다. 월남민 출신으로 데뷔 이래 줄곧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천착하며 우리 분단문학에 굵은 획을 긋고 있는 이씨의 작품세계를 개관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노작가의 생생한 육성이 여실하게 담겨 있다는 것. 예컨대 <소시민>을 독회하는 자리에서 이씨는 한때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이 '소시민의 작가'로 불렸던 일에 대해 "(그런 호칭엔) 사회를 뒤집어 엎어 놓을 만한 작가가 아니고, 그저 소시민, 그런 작가다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담겨 있어 좀 섭섭했다"고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다.

지난해 연작소설집 <별들 너머 이쪽과 저쪽>을 펴내는 등 여전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는 이씨의 소설창작론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인물을 잘 그려보도록 우선 공을 들이세요. 주제를 전달한다? 그런 건 곤란해요. 주제부터 미리 작가가 생각해서, 그 잘난 머리끝으로 계산해서, 어쩌고 저쩌고? 그런 건 전혀 헛수고지요."(66~67쪽)

또한 이씨의 비상한 기억력 덕분에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풍속사는 물론, 황순원 김동리 전혜린 전광용 이문구 등 작고 문인들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문단사 자료로도 의미가 있다.

이씨는 "독회를 통해 나 자신도 잊고 있던 예전 작품까지 다시 읽어보니, 작품을 쓰던 당시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문학 한다며 보낸 60년 세월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북 문제는 내게 끊임없는 문학적 영감과 소재를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강조한 그는 재외동포들의 신산한 삶을 다룬 연작소설집을 연내 출간할 계획이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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