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풀렸네…대리운전 웃돈 줘야 '콜' 응답
직장인 박창익씨(43)는 지난 11일 저녁 술자리를 마친 뒤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에서 "고객님 죄송합니다. 지금은 기사가 모자라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들렸다. 그는 몇 군데 업체에서 같은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꿔 5000원을 더 준다고 했지만 기사는 오지 않았다. 결국 1만원을 더 주고서야 그는 운전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대리운전 요금은 요즘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 종로에서 만난 대리운전자 김희열씨는 "수요가 몰리는 목요일이나 금요일 밤에 대리기사를 부르기가 힘든 것은 기사들이 밀려드는 콜 사이에서 '골라타기'를 심하게 하는 탓"이라며 "우리도 조금 더 주는 사람한테 간다"고 말했다.

◆대리 없는 밤은 상상불가

'대리'없는 대한민국의 밤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대리운전 이용 고객은 전국적으로 하루 최대 40만명에 육박한다. KTX의 1일 이용객인 10만명을 훨씬 웃돈다. 불경기 때 된서리를 맞기도 하지만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요즘 대리를 부르는 콜은 급증하고 있다.

대리운전의 시장규모는 업계 추산 연간 3조원에 달한다. 1위 업체인 코리아드라이와 2위인 세븐콜은 월 매출이 1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이 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200억원대의 사모펀드와 개인투자자들이 굵직굵직한 대리운전 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투자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한 사모펀드는 세븐콜에 인수 러브콜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대리운전 번호를 수억원에 사겠다는 개인들도 나오고 있다. 크고 작은 업체를 모두 합하면 전국적으로 7000개 대리운전 업체가 영업 중이다. 500만원만 투자하면 업체를 차릴 수 있는 등 시장진입 장벽은 거의 없다.

◆A급 기사는 월 500만원 벌어

전국에 7만1000여명으로 추산되는 대리운전 기사들이'맹활약' 중이다. 이 중 A급 기사는 월 500만원까지 벌고 있다. 나머지는 170만~200만원 정도 벌어간다. 김호 한국대리운전협회 사무처장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만 서비스 노하우에 따라 기사들이 가져가는 돈도 다르다"고 말했다. 서비스 요금은 대개 1만2000원이지만 영세한 경우 1만원 밑으로 저가공세를 펴기도 한다. 회사와 기사 간 배분 비율은 대개 20 대 80이다. 최근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5 대 75인 곳도 있다.

대리운전 기사는 외제차 운전은 꺼린다. 작은 흡집만 내도 한 달 수입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업계는 규칙이 없는 정글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수와 운전기사의 수,매출액 등의 규모는 국세청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관련 법규가 없어 통계조차도 없다. 업계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는 셈이다.

◆무보험 대리운전 위험 수위

가격 경쟁이 심화되자 영세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험가입도 안한 상태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김호 사무처장은 "기사 1인당 연 72만~80만원을 보험료로 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현재 보험가입을 강제하는 법규가 없어 무보험 대리운전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리운전 기사의 자격이나 전과 유무를 제한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도 이용자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

◆잠자는 법안

지난 17~18대 국회까지 의원입법으로 6건의 대리운전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이들 법안은 업체의 설립기준과 보험가입 의무화,대리운전기사 자격의 검증과 재교육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다. 대리운전 업체들은'사단법인 한국대리운전협회' 등 협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임현우/이현일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