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창조적 세포분열, '트립합'

입력 2010. 4. 27. 20:40 수정 2010. 4. 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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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24] 매시브 어택의 <언피니시트 심퍼시> (1991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친 '힙합의 황금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시기는 런 디엠시가 <레이징 헬>을 발표한 1986년부터 닥터 드레가 <더 크로닉>을 공개한 1992년까지의 기간에 집중된다. 힙합이 대중적 성공과 음악적 성취를 아우르며, 인종의 장벽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문화적 현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다양한 하위 장르를 낳은 음악적 세포분열이야말로 힙합의 급속한 진화에 양분을 제공한 원천이었는데, 이른바 '트립합'은 그와 같은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돌연변이였다.

몽환적 체험을 뜻하는 속어 '트립'과 '힙합'의 조어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트립합은 느린 비트와 환각적인 무드를 표면화한 새로운 유형의 사운드였다. 비평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트립합의 혁신성을 "연주곡 중심의 추상적인 사운드… 래핑과 분노를 제거한 힙합"이라고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변별적 요소들이 지역성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트립합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외부에서 도래한 힙합의 창조적 변용이었다. 실제로 트립합의 원산지가 미국이 아닌 영국, 대도시 런던이 아닌 지방도시 브리스틀이라는 사실은 그것의 창의성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요인이다. '브리스틀 사운드'라는 명칭이 트립합의 등가적 표현으로 흔히 사용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영국 남부 서안의 항구도시 브리스틀은, 노예무역의 거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영국에서 흑인 문화의 연원이 가장 오래고 흑인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블루스에서 레게까지 다양한 흑인음악의 양상들이 지역문화의 저변에 녹아들어 있었는데, 그런 풍토가 "미국 힙합의 가난한 사촌"(비평가 조 머그스)에 불과했던 영국의 힙합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바탕이 되었다. 브리스틀 사투리의 억양이 래핑과 위화하는 측면에서 연주와 보컬을 선호했고, 하우스 음악과 레이브 문화에 조응하는 지점에서 몽환성과 추상성을 강화했던 과정으로부터 파생한 절충적 부산물이 바로 트립합이었던 것이다. 매시브 어택은 그 새로운 장르의 창조자였고 '언피니시트 심퍼시'는 그 새로운 장르의 문법이었다.

음악지 <모조>로부터 "영국 댄스(음악)계가 배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은 데뷔작 <블루 라인스>의 수록곡으로, 매시브 어택의 최대 성공작인 '언피니시트 심퍼시'는 아직 트립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전에 그것의 특장을 집약해낸 선구적 싱글이었다. 비평가 네이트 패트린의 말마따나, "1960년대의 모타운 솔과 1970년대의 디스코와 1980년대의 하우스와 1990년대의 힙합"을 결합한 이 노래의 "혁명적이라기에 충분한 프로덕션"은 브리스틀식 흑인음악 절충주의의 완성판이었다. 래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게스트 보컬리스트 샤라 넬슨을 중용함으로써 도달한, 댄스 음악도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크로스오버적 성취였다.

참고로, 이 노래의 싱글 커버에는 '집중공격'을 의미하는 본래 이름 대신 '매시브'란 단어만 표기되어 있다. 당시 진행중이던 걸프전과의 연관성 논란을 피하려는 목적이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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