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젊은 반란 이끈 '브릿팝'

2010. 4. 6. 21: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21] 라스의 <데어 쉬 고스>(1990년)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418석을 확보함으로써 165석에 그친 보수당을 압도했던 것이다. 18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노동당의 지도자 토니 블레어는 43살의 젊은 나이로 총리직에 오름으로써, "의회가 자체적인 유스퀘이크(젊음의 반란)를 겪고 있다"는 <배니티 페어>의 촌평처럼, 영국의 이미지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새로운 노동당'(뉴 레이버)과 '영국의 쇄신'(리-브랜딩 브리튼)을 앞세운 블레어의 승리는 또한, 대중문화계와의 교감을 통해 '쿨 브리태니카'의 양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화에서 스포츠까지, 영국적 대중문화의 새로운 활기를 의미하는 캐치프레이즈. 그것의 중추는 '브릿팝'이었다.

브릿팝은 1990년대의 영국 대중음악 전반을 포괄하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지만, 구체적으로는 기타 연주를 앞세운 모던 록 스타일을 가리킨다. 국가적 긍지의 뉘앙스가 다분한 명명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전적으로 영국 대중음악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196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이었던 비틀스, 후, 킹크스 등의 사운드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고, 거기에 영국적 삶과 틀을 강조한 서사를 담았다. 신시사이저와 샘플링이 폭주했던 1980년대에 대한 반발이자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한 대처리즘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셈이다. 전통의 현대화가 낳은 현대적 전통. 블레어의 노동당은 그것에 주목했다. 실제로 블레어는 1996년의 '브릿 어워드'와 '머큐리 뮤직 프라이즈' 시상식에 잇따라 참석함으로써 젊은 영국과 소통했고 브릿팝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라스의 '데어 쉬 고스'에 대한 때늦으나마 정당한 평가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데어 쉬 고스'는 브릿팝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도 전에 브릿팝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던, 브릿팝 최초의 히트곡이었다. 애초 1988년 싱글로 발매되었다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졌던 이 노래는 2년 후에 발표된 라스의 데뷔 앨범에 다시 소개됨으로써 대중에게 알려졌고, 1990년대 중반 브릿팝의 전성기에 마침내 판테온으로 영전했다. 그래서 <빌보드 음악사전>은 "브릿팝의 근간이 1990년 리버풀 출신 밴드 라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과 함께 도래했다"고 했는데, 해당 작품의 정수를 함축한 것이 바로 '데어 쉬 고스'였다. 찰랑거리는 일렉트릭 기타와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매혹적인 팔세토와 위악적인 육성이 번갈아 넘나드는 이 노래는,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연주 시간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브릿팝이 차용한 멜로디와 멜랑코리의 정미한 결합"(음악지 <큐>)을 보여줌으로써 브릿팝의 "시금석"(존 해리스)이자 "청사진"(토비 크레스웰)을 완성시켰다. 특히, 후렴구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노래 형식과 단순 명료한 인트로의 멜로디는 '데어 쉬 고스'의 선구적 독창성을 입증하는 인장과도 같다.

라스의 리더인 리 메이버스는 자신들과 여타 밴드들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우리의 것은 영혼이지만 그들의 것은 패션일 뿐"이라고 답한 바 있다. 창작자의 자존심과 자의식에 투철한 그의 태도에서, 정권이 자본을 볼모로 예술계의 영혼을 요구하는 우리의 상황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문화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시금석과 암울한 청사진을 본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공식 SNS 계정: 트위터 www.twitter.com/hanitweet/ 미투데이 http://me2day.net/hankyoreh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