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체스터' 그 굵고 짧은 흔적

2010. 3.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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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19] 스톤 로지스의 <풀스 골드>(1989년)

1980년대 말 영국의 대중음악계는 창조적인 혼란 속에 있었다. 안팎의 조건에 대한 불가피한 반작용이었다. 3기에 접어든 대처 행정부를 향해 누적된 불만이 팽배했고, 뉴웨이브와 신스팝의 유행 이후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시장 주류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과 태도에서 공히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1988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진행된 그 일련의 문화적 변화 양상을 가리켜 '두 번째 사랑의 여름'이라 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 그것은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반문화 운동과 여러모로 닮은꼴이었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부정과 음악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음악의 새로운 조류가 영감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힙합의 샘플링 기법과 하우스의 리듬 패턴이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1990년대 전반 영국에서 광범위한 문화 현상이자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웃자라게 되는 레이브의 기초가 그로부터 마련되었다. 방송 진행자이며 인디 레이블 설립자인 토니 윌슨이 "1990년대는 블랙 박스의 '라이드 온 타임'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라 있던 6주 사이(1989년 9~10월)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 근거도 거기 있다. '열광하는(매드) 맨체스터'라는 의미의 조어인, 이른바 '매드체스터'는 그런 영향 관계에서 탄생한 유니크한 하이브리드였다.

매드체스터는 비단 음악적 성향만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다. 패션에서 약물까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한 하위문화 전반의 트렌드를 포괄하는 명칭이다. 거기에 배경음악을 제공한 것이 매드체스터 사운드였고 그것은, 단순히 말해, 펑크(Funk)의 그루브와 기타 록의 어법을 결합한 독특한 뉘앙스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비평가 존 해리스는, 역동적 리듬과 명료한 선율을 결합한 그것의 에너지를 통해 "한때 후기 산업사회의 더께이며 눅눅한 날씨의 동의어와 다름 아니었던 도시가 쾌락적인 총천연색 파라다이스로 변형되었음을 전파했다"고 평했던 것이다. 스톤 로지스의 '풀스 골드'는 그 아이콘 격인 노래다.

'풀스 골드'는 일종의 반전이었다. 절찬을 획득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더 스톤 로지스>(1989)의 후속 싱글로 공개되었으나 음악적 지향은 그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음악지 <엔엠이>와 주간지 <옵저버>가 나란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국 뮤지션의 앨범"으로 1위에 올린 바 있는 데뷔작이 영국 기타 록 전통의 정수였다면, 비평가 개리 멀홀랜드가 "영국 밴드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펑크(Funk) 레코드"라고 극찬한 이 노래는 매드체스터의 본격적인 공세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꿈틀대는 베이스 라인과 맛깔나는 기타 리프가 어우러져 10분에 가까운 연주 시간을 넘실대는, '풀스 골드'의 흡인력은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열광을 동시에 획득한 궁극적 성취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배금주의를 냉소한 이 노래의 성공이 곧장 레코드사와의 계약 분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탁월한 밴드가 법정 공방에 묶여 백색왜성으로 사그라지면서 매드체스터의 짧은 영화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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