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 바닐리-MTV-그래미 '립싱크 공모 사건'

입력 2010. 3. 17. 09:10 수정 2010. 3. 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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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18. 밀리 바닐리의 <걸 유 노 이츠 트루>(1989년)

"32회 그래미 어워드는", 음악사가 루크 크램튼과 대피드 리스에 따르면, "좋은 면에서나 나쁜 면에서나 공히, 그래미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상식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제 와 1990년 2월21일 벌어진 시상식의 "좋은 면"이 무엇이었는지 얘기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담보하고 자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쁜 면"이라면 굳이 그런 수고가 필요치 않다. 같은 해 11월19일, 그래미가 '최우수 신인상' 시상을 철회하면서 명백해진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그래미 52년 역사에 유일한 사례로 남은 오점. '최우수 신인상' 부문 최고의 선택이 1965년의 비틀스였다면, 최악의 선택은 바로 1990년의 밀리 바닐리였다. 독일 출신 남성 듀오 밀리 바닐리는 1989년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럽에서만 발표한 앨범 <올 오어 너싱>(1988)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한 그들은, 수록곡 일부를 교체하고 타이틀을 바꾼 메이저 데뷔작 <걸 유 노 이츠 트루>로 순식간에 슈퍼스타덤에 올랐다. 앨범을 6백만장이나 팔아 치웠고, 3곡의 빌보드 넘버원 싱글 포함 5곡의 톱5 히트를 만들어냈다. 첫 싱글로 차트 2위까지 오른 타이틀 트랙 '걸 유 노 이츠 트루'는 그 거대한 성공의 시발점이었다. 유럽의 댄스뮤직 전통과 미국의 뉴 잭 스윙 경향을 결합한 대중적 절충주의의 산물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츠 트루'가 몰락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발단은 그해 엠티브이 프로그램 '클럽 엠티브이'가 기획한 순회공연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밀리 바닐리가 사전 녹음된 음원에 맞춰 '…이츠 트루'를 부르(는 척하고 있)던 중, 기기 오작동으로 립싱크가 탄로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찰스 쇼라는 뮤지션이 "밀리 바닐리의 앨범에서 노래를 한 것은 자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고 급기야 사태는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1990년 11월14일,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의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진 진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공연만 립싱크를 한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앨범 제작에는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무명 가수들을 기용해 완성한 앨범에 이름을 올리고 뮤직비디오에서 춤춘 게 전부였다. 그들의 근육질 몸매와 잘생긴 얼굴에서 상품성을 발견한 파리안의 제안에 따라, 밀리 바닐리의 두 사람은 영혼을 팔고 명성을 얻는 악마의 거래에 동의했던 것이다. 비평가 짐 파버는 "80년대 후반 차트를 지배한 댄스 집단의 재능이란 노래와 연주가 아니라 (그나마 나은 경우) 춤 실력이었고 (그마저 아닌 경우) 화면발 좋은 얼굴뿐이었다"고 비판했는데, 밀리 바닐리야말로 그 상징적인 사례였다.

밀리 바닐리 파문은 실상, 성공 지상주의에 물든 음악업계의 합작품이었다. 대박의 꿈만 좇은 프로듀서, 그와 결탁한 메이저 레이블 아리스타, 립싱크를 알고도 공연을 계속한 엠티브이, 논란을 알고도 시상을 강행한 그래미가 모두 공범이었다. "춤추며 노래까지 하기는 힘드니까 립싱크도 상관없다"는 식의 맹목적 팬덤 또한 마찬가지다. 업계 전체가 한통속인 위험한 관계. 어쩐지 익숙한 풍경 아닌가?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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