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석 감독│뛰어난 선배들의 드라마

최지은 2010. 3.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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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 같지만 그 바닥에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다이렉트로 싸우는 이야기. 80년대적 이데올로기와 90년대적 현상이 섞여 있는 독특한 느낌" ( 오종록 감독),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설정을 이용한 전복적인 이야기로 대중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낸 작품" ( 김병욱 감독), "볼 때마다 정신줄을 놓고 극에 끌려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간신히 잡은 마지막 정신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베개를 쥐어 뜯어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 홍자매) SBS < 발리에서 생긴 일 > (이하 < 발리 > )이 방송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여전히 이 작품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한 여자와 돈이 지루한 남자, 야망이 큰 남자와 자존심이 강한 여자. 출생의 비밀이나 복수 같은 장치도 없이 네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야기만으로 < 발리 > 는 멜로의 정수를 보여주며 한국 드라마사에 화인 같은 자취를 남겼다.

"처음부터 작가가 쓴 캐릭터, 연출이 이해하는 캐릭터, 배우가 표현하는 캐릭터가 거의 일치해 움직였다. 조인성, 소지섭 같은 배우들도 그 전에는 자신감이 부족해 잠재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잘 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니 그 이상을 해냈다. 다들 운명같이 만났던 거다." < 도시남녀 > , < 사랑의 전설 > 등을 통해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여주었던 최문석 감독은 < 발리 > 를 만나 특기를 발휘했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멜로 특화적 연출의 비결은 단순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삐삐도 핸드폰도 없었으니까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종로 서적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그건 영원히 토요일 오후 두시 종로서적인 거다. 한 시간 전에 가서 기다리면서 너무 즐겁고, 5분 전이 되면 초조해지고, 안 나오면 두 시간씩 기다리고. 그렇게 엄마 몰래 정독도서관 다니면서 여학생들 만나 영화 한 편 보고 빵집 가던 시절의 설레던 감정들이 남아 있다." 유독 감수성이 뛰어나던 소년에서 어느새 연출 20년차로 접어든 최문석 감독이 선배들의 작품을 추천했다.

SBS < 모래시계 >1995년, 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좋은 드라마를 얘기할 때 < 모래시계 > 는 기본으로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실 김종학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듦으로써 후배 연출자들이 드라마를 할 수 있는 소재적 공간을 싹 말살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80년 광주와 삼청교육대 등 굵직굵직한 내용들을 다 다루는 바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현대사 속의 시대극이 거의 없고, 만약 같은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 해도 < 모래시계 > 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이미 최선의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에 후배들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있다. 물론 이건 칭찬이다. (웃음)"

SBS < 피아노 >2001년, 극본 김규완, 연출 오종록

"오종록 선배의 작품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해서 신인 시절 영향을 많이 받았다. 드라마 국에서 같이 일한 적도 있고, 우리 둘 다 독문학을 전공했는데 공통점은 둘 다 독어는 잘 못 한다는 거다. (웃음) < 내 마음을 뺏어봐 > < 결혼 > < 해피 투게더 > 같은 초기작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중에 제일 강렬했던 건 역시 < 피아노 > 다. 오종록 선배는 헛헛하게 하는 작품이 없다. 아주 질긴 사람이고, 연출이나 이야기를 만들 때도 나보다 훨씬 '쥐어짜는' 스타일이다. 인간의 감정을 겉에서만 훑지 않고 막 할퀴고 상처 내면서 끝까지 다 보여주는데 그 힘이 대단하다."

MBC < 대장금 >2003년, 극본 김영현, 연출 이병훈

"드라마 일을 하다 보니 새 작품이 시작되면 대부분 1, 2회는 놓치지 않고 본다. 그 다음부터는 재미가 있어야 꾸준히 보게 되는데 < 허준 > , < 이산 > 은 물론 < 상도 > 까지 이병훈 감독의 사극들은 다 재미있게 봤다. 특히 < 대장금 > 을 좋아했는데 스케일이 큰 이야기 안에서도 디테일이 대단하고, 미술을 운용하거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작품을 통해 각기 다른 작가들과 작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비슷한 색깔이 나온다는 것은 감독이 가지고 있는 색깔 때문인 것 같고 이는 사극이라는 하나의 장르, 자신에게 잘 맞는 분야를 계속 연구하신 결과라고 본다. 지금도 작품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비롯해 많은 연출가들의 꿈이기도 하다."

< 발리 > 이후 최문석 감독은 < 온리 유 > 와 최근 종영한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 를 연출했다. < 발리 > 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KBS < 아이리스 > 나 < 추노 > 등 볼 거리가 다양하고 규모가 큰 작품들이 주목받는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새로운 숙제다. 하지만 "드라마의 기본은 멜로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관계의 본질에서 나오는 갈등과 감정을 스토리에 어떻게 잘 담아 만들어내느냐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살릴 수 있게 멋진 포장을 찾고 있다." 지금은 CP를 맡아 데스크에 있는 그가 다시 현장으로 나오는 날,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진 멜로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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