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권력을 향한 음악적 도발

2010. 3.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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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17] 퍼블릭 에너미의 <파이트 더 파워>(1989년)

미국 위스콘신대학 교수이자 역사가인 크레이그 워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인종 간 관계에서 1890년대 이래 최악의 시기였다"고 썼다. 부자와 빈자의 위화감, 백인 기득권층과 흑인 소외계층의 갈등이 "미국인들을 공습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우리'와 '저들'로 이분한 레이건의 보수적 가치관,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뉜 냉전의 적대적 분위기가 결합해 만들어낸 시대의 공기가 고스란히 내정에 반영된 결과였다. 여파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가속화했다. 시사평론가 케빈 필립스가 당시를 돌이켜 "1980년대는 미국 상류층의 승리였다"고 한 근거다. 워너의 말마따나, "공허한 향수가 암울한 현실보다 낫다는 확신을 심어준 레이건"의 시대에 "치유의 동력으로서 음악은 저점을 찍었다." 당시 로큰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퍼블릭 에너미는 나쁜 길을 가기로 결심한 소수 용감한 뮤지션들 가운데 하나였다. 1988년 발표한 앨범 <잇 테이크스 어 네이션 오브 밀리언스 투 홀드 어스 백>을 통해 일찌감치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힙합 그룹 가운데 하나의 위상에 도달한 그들은 "권력에 대항하라"고 외친 노래 '파이트 더 파워'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가장 첨예한 존재가 되었다. 비평가 에릭 하비는 이 노래가 "퍼블릭 에너미를 올바른 형태의 '공공의 적'으로 재정립시켰다"고 평하며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정치적 정체성에 관한 음악사상 가장 강력하고 논쟁적인 성명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파이트 더 파워'에서 퍼블릭 에너미는 레이건의 미국을 향해 '함무라비식' 대응을 선택했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아니 우리는 같지 않다/ 우리는 (저들의) 계략을 모르기 때문이다." '저들'이 '우리'를 배제시키려 한다면 똑같이 대응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조화된 백인 자본의 흑인 문화 수탈을, 엘비스 프레슬리와 존 웨인이라는 아이콘들을 통해 쟁점화시켰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엘비스가 영웅이지/ 그러나 내게는 손톱만큼의 의미도 없지/ 그는 철저한 인종주의자였고/ 단순하고 무지한 녀석일 뿐이었어." 물론 그것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 메타포였다. 그래서 비평가 개리 멀홀랜드는 "엘비스에 대한 묘사에 동의할 수는 없다"면서도 "백인 미국을 최면 상태에 붙잡아놓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엘비스와 존 웨인을 겨냥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고 썼던 것이다.

'파이트…'의 폭발력은 스파이크 리의 영화 <두 더 라이트 싱>과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배가된 것이기도 했다. 당대 흑인 문화정치의 전위를 대표하던 문제적 주체들로서 퍼블릭 에너미와 스파이크 리의 만남은 그 자체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가 연출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1963년 '워싱턴 행진'을 비판적으로 패러디해 다시금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금도 도처에서 자행되는 자본과 권력의 야만을 살벌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유통기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정권이 앞장서 부자와 빈자의 위화감,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이 나라의 상황이 단적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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