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모윤숙 스캔들이 '남한'을 만들었다?

김종목 기자 2010. 1. 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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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공임순 | 앨피저자는 전작인 < 식민지의 적자들 > (2005)에 이어 '친일'과 '반공' 문제를 파고든다. '친일=반공'은 새로울 것 없는 학술 소재지만, 핵심 내용과 주장은 도발적·전투적이다. 식민지기 친일과 해방 이후 미군정기 반공·친미의 연결 고리를 일본에 협력했던 친일 엘리트 여성과 친미·반공 성향의 권력을 지닌 남성들(국가·권력) 간 일어난 '스캔들'에서 찾는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스캔들이 정치와 역사에 끼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직접적 사례로 드는 게 친일 인사 모윤숙(1910~90)과 벤가릴 메논(1897~1974)의 스캔들이다. 1948년 1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의장이자 인도 대표 자격으로 한국에 온 메논은 환영 파티 자리에서 만난 모윤숙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이승만의 양딸 같은 존재였던 모윤숙은 이승만의 지시로 메논을 유인해 이승만과의 독대 자리를 마련했다. 메논은 평소 입장을 바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다. 이후 메논은 자신의 단독 정부 찬성 입장과 모윤숙과의 관계에 대해 "내 심장이 내 머리를 이기도록 허락했던 유일한 경우"라고 했다.

1970년 세계 펜클럽대회에서 사회를 보는 모윤숙(사진 왼쪽)과 모윤숙이 48년 발간한 < 메논박사연설집 > 에 수록된 메논의 사진. 저자는 모윤숙과 메논의 사적 친교의 결과물인 '스캔들'이 '반공국가주의'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앨피 제공모윤숙이 해방 이후 이승만의 지시로 만든 '낭랑구락부'도 스캔들의 근원지다. 낭랑구락부의 성격은 모윤숙의 회고에서 잘 나타난다.

"이승만 대통령이 불러 '외국 손님 접대할 때 기생 파티 열지 말고 레이디들이 모여 격조 높게 대화하고 한국을 잘 소개하라'고 분부하지 않겠나. 우리는 부랴부랴 낭랑구락부를 조직하고 김활란 박사를 고문으로 내가 회장을 맡았지. (중략) 낭랑은 정부의 부탁으로 이른바 파티 대행업을 한 셈인데…." 해방 공간에서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던 미군정의 고위 관료가 참석하는 사교파티는 "엘리트 여성들이 이들을 접대하는 성적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음증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스캔들의 속성대로 근거 없는 소문과 억측이 나돌았다. 모윤숙은 낭랑구락부가 한국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고 자부했는데, 저자는 "자부심의 밑바탕에는 사교는 여성적 영역이라는 성별 분리 정치가 자리하고 있다. 여성과 사교의 등치는 국가가 여성을 동원하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핵심은 친교와 스캔들이 한국 사회 조직과 정치질서에 개입·관여해 현대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모윤숙과 메논의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더라면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권이 탄생했을까. 모윤숙조차도 "메논 단장과의 우정 관계가 없었더라면 단독선거는 없었을 것이고,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 자리에 계셨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 '대한민국/남한'의 탄생 스캔들이 낳은 사생아가 반공국가주의"라고 규정한다.

문제의식은 '지금-여기'와 닿아 있다. 이승만-미군정-친일인사가 만들어낸 밀실정치 같은 당시 정세는 불투명한 정책 결정, 과대 경찰국가의 부활, 아프간 파병 등 '현재'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스캔들화된 사회의 불투명한 의사소통과 관권화된 특혜 시비야말로 '대한민국/남한'의 불안정한 권력 기반과 강압적 국가기구의 팽창을 견인하고 주도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소설에 드러난 후기자본주의, 인문학의 위기, 박정희의 '혁신'의 전유 등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문제를 두루 짚는다. 전투적·도발적 문제 제기, 시원스러운 규정이 장점이면서도 한계다. 1만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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