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음악, 백인들에게 호령하다

2010. 1. 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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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08] 런-디엠시의 <워크 디스 웨이>(1986년)

캐머런 크로의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는, 스틸워터라는 가상의 록 밴드를 통해, 1970년대 대중음악계의 이면을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여기서 크로는 특히, 대중음악 비평가로 활동했던 자신의 전력을 고증 근거로 삼아, 레코드 업계와 음악 미디어가 맺는 공생 관계의 불가근불가원한 속성을 실감 나게 비춰냈다. 스틸워터가 대중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의 표지 모델로 실릴 예정이란 소식에 멤버들이 환호하며 닥터 훅의 1973년 히트곡 '더 커버 오브 더 롤링 스톤'을 합창하는 장면이 그 한 예다. "우린 부자가 돼가고 있지만/ 아직 <롤링 스톤>의 표지에 사진을 싣지는 못했지/ 내 사진이 그 표지에 실린 걸 보고 싶어." 비평가의 리뷰가 뮤지션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었던 시절, 음악계 최고의 권위지인 <롤링 스톤> 표지에 모델로 등장한다는 것은 곧 주류 스타덤에 오름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요컨대, 런-디엠시는 1986년 12월4일치 <롤링 스톤> 표지를 장식함으로써 대중음악사를 새로 썼다.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최초'의 기록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과였다. 무엇보다, 보수적 권위지로 하여금 대중음악계에 힙합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하도록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괄목할 일이었던 것이다. 런-디엠시는 대도시 게토에서 탄생한 흑인 전유의 하위문화를 백인 주류의 제도권으로 진입시킨 전위였고, 그 배경에는 힙합 앨범으로서 사상 처음 멀티 플래티넘 판매고를 기록한 <레이징 헬>이 있었다. 싱글 '워크 디스 웨이'의 성공이 견인차였다.

'워크 디스 웨이'는 빌보드 싱글 차트 톱5를 돌파한 최초의 랩 음악이다. 그런 기록의 행간에는 백인 대중이 런-디엠시의 노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방법론의 성공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워크 디스 웨이'는 하드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의 1975년 히트곡으로 백인 대중에게 이미 친숙한 노래였다. 런-디엠시는 거기에 브레이크 비트와 랩 라임을 얹어 새로운 퓨전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른바 '로큰랩' 스타일이었다. 1990년대 후반 대세를 이루게 되는 랩 메탈/얼터너티브 메탈의 음악적 기원이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런-디엠시의 전략이 상업적 염두나 정략적 의도 따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984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이 그 증거다. '록 박스' 같은 곡에 선명히 드러나 있듯이, 그들은 시작부터 기존 힙합과 다른 독자적 노선을 견지했다. 록 음악 요소를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이 수단이었다. 그런 의도는 두 번째 앨범 <킹 오브 록>에서 더욱 명백해졌다. 제목 그대로 그들은 새 시대의 록 스타를 꿈꿨던 것이다. '워크 디스 웨이'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유의성을 갖는다.

런-디엠시는 기존 힙합을 올드 스쿨로 격리시키며 랩 음악사를 전후로 나누는 척도로 대두했다. 단속적이고 공격적인 비트, 록 음악과의 퓨전, 거리의 언어로 구성된 라임, 창의적인 스트리트 패션, '투 턴테이블스 앤 어 마이크로폰'으로 요약되는 무대 구성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힙합의 외양과 내실이 그들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워크 디스 웨이'는 힙합 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는 축가였던 셈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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