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 기타의 '콧대'를 세우다

입력 2009. 12. 15. 21:59 수정 2009. 12. 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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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105]

잉베이 말름스틴의 <이카루스 드림 스위트 오퍼스 4>(1984년)

베토벤이 재림하여 신시사이저를 발견한다면 어떤 연주를 펼칠까? 키아누 리브스를 스타덤에 올린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처>(1989)는 당대적인 클리셰를 인용하여 대답했다. 헤비메탈을 연주했을 것이라고. 이를테면, 시종일관 에어 기타(맨손으로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입 소리를 내는 행위)를 해대는 메탈 키드 주인공들에 의해 현대로 소환된 베토벤이 쇼핑몰의 악기 매장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데자뷔처럼 보였다. 고전 음악의 비르투오소(거장) 개념과 헤비메탈의 파괴적 연주를 결합시킨 혁신의 표상으로서 잉베이 말름스틴의 등장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그를 가리켜 "고전음악 연주자가 왜곡된 시공간에서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쓰면서 비평가 데이비드 코노프도 아마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말름스틴은 1980년대 헤비메탈 트렌드에 클래식 크로스오버 열광을 몰고 왔던 주인공이다. 스웨덴 출신으로 1982년 약관의 나이에 미국으로 스카우트됨과 동시에 기존 연주자들을 경악시키기 시작한 그는, 솔로 데뷔작 <라이징 포스>를 통해 불과 일년 남짓 만에 새로운 유형의 기타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미 헨드릭스와 리치 블랙모어(딥 퍼플의 기타리스트)의 방법으로 바흐와 파가니니의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이른바 '네오 클래시컬 메탈'이라는 새 경향의 창조적 주체로 등극했던 것이다. "좋게든 나쁘게든, 록 기타의 새 시대가 열렸고"(피트 브라운), 그 결과로 "1985년께는 말름스틴의 영향력에 견줄 만한 것이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그것밖에 없는"(<기타 월드>)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말름스틴은 기타 비르투오소의 동의어였고, <라이징 포스>의 수록곡 '이카루스 드림 스위트 오퍼스 4'는 네오 클래시컬 메탈의 시대를 상징하는 송가였다.

이 노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지(G)단조'를 변주한 곡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헤비메탈의 폭발적 사운드와 바로크 음악의 대위적 선율을 병치하고, 어마어마한 속도의 스윕 피킹(빗자루질 하듯 기타줄을 쓸어내리는 주법)과 우아하게 공명하는 아르페지오(한음 두음씩 기타줄을 뜯는 주법)를 대비시켜 드라마틱한 연주곡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탁월한 키보디스트 옌스 요한손과 함께 연출해낸 현과 건의 불꽃 튀는 경합도 마찬가지다. '이카루스 드림…'은 '장르의 관습'을 세운 기념비였고, 말름스틴은 무수한 아류를 낳은 오리지널이었다.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름스틴의 연주 혁명은 주류 평단의 전폭적 환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과도하게 음을 낭비한다"거나 "지나치게 기교적이다"라는 이유였다. 블루스의 뿌리와 로큰롤의 본성을 옹호하는 베이비붐 세대 평론가들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이 작동했던 탓이다. 그러나 사운드의 카타르시스를 메시지의 차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보다 우선시하곤 했던 젊은 청취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말름스틴에 대한 동경으로 기타를 잡은 전세계의 잠재적 연주자들이 그것을 방증했다. 문제는 오히려 그의 유아독존적 태도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곤 세상 어느 기타리스트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극단적 자존심이야말로 그의 야망을 '이카루스의 꿈'으로 추락시킨 원인이었다. 말름스틴의 콧대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대중음악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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