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러더' 향해 내리친 죽비소리

2009. 11. 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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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102] 폴리스의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1983년)

1984년 벽두를 장식한 것은 두 편의 영상물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기획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애플사의 컴퓨터 광고 '1984'. 전자는 뉴욕과 파리를 위성 연결한 초대형 이벤트였고, 후자는 에스에프(SF)적 상상력을 동원한 1분짜리 스펙터클이었다. 용도와 규모에서 완전히 상이한 두 작품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예견했던 불길한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당대적 정서의 응답이었다는 측면이다. 백남준은 테크놀로지의 현재에 기반한 장치로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비관한 오웰의 우려를 반박했고, 리들리 스콧은 '빅 브러더'가 통제하는 세상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수단으로 컴퓨터 혁명을 형상화했다. 테크놀로지의 낙관주의가 두 작품을 관통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르는 동안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 오웰의 우려가 기우였을 뿐이라고 코웃음 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폐쇄회로 티브이 영상과 컴퓨터 로그인 기록과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감시하는 시대에, 남루해진 것은 오히려 기술의 미래 혹은 미래의 기술에 걸었던 희망이다. '스타 워즈'가,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목으로서가 아니라, 첨단 군사전략의 별칭으로서 더욱 빈번하게 거론되던 시대의 불온한 움직임을 간과했던 탓이다. 폴리스의 1983년 작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를 당대의 은유로 읽는 이유도 거기 있다.

물론, '에브리 브레스…'는 직접적인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 이 노래는 애정이 집착으로 화한 관계를 그린 사이코드라마다. "모르겠어? 넌 내 것이란 걸/ 네가 내딛는 발걸음마다에 내 가련한 마음이 얼마나 상처받는지를 말이야."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스토커의 폭력, 나아가 관심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파파라치의 압박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모티브는 작곡자(이자 보컬리스트)인 폴리스의 리더 스팅이 실패한 자신의 결혼 생활과 악화일로의 밴드 내부 인간관계에서 느낀 환멸의 반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수동공격(패시브-어그레시브)적 자기방어의 기제를 작동하며 '빅 브러더'를 떠올렸다는 사실이다. 인간 감시와 통제의 문제가 노래 행간에 자리한 것이다.

요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네가 행하는 모든 움직임과 네가 깨뜨리는 모든 맹세를/ 네가 가장하는 모든 미소와 네가 주장하는 모든 권리를/ 나는 지켜보고 있을 거야." 개인적 집착의 문제를 통해 사회적 억압의 장치들을 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평가 데이브 마시는 이 노래가 "당대 모든 독재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이미지로서, 빛나는 심리정치학적 메타포"라고 했고, 개리 멀홀랜드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할 때 더욱 강렬하게 작용한다"고 평했다.

이 노래가 무려 8주간 빌보드 정상을 석권했으며, 당대 가장 인기 있는 결혼 축하곡 가운데 하나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비수 품은 단어들을 곡진한 사랑의 언어로 곡해한 때문이기도, 신랄함을 감춘 선율의 명료함을 친근하게 받아들인 때문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 노래를 정치/자본/언론 권력에 대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의 지침이라고 의도적으로 오역한들 이제 궤변이라고 할 일은 아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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