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긴 욕망' 계산된 성공

2009. 11.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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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98]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1984년)

전성기의 찰리 채플린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안다"고 자랑했고, 비틀스의 존 레넌은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자신했다. 물론 그 발언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서구 사회에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기독교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대량문화 시대의 스타덤이라는 물신의 과시였다는 점이다. 불타는 십자가와 성직자의 섹스를 묘사한 뮤직비디오('라이크 어 프레이어')에서 마돈나가 의도했던 바도 그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논란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의 말마따나 "유명세를 예술로 승화"시킨 "대량문화 그 자체"인 인물로서 마돈나는, 금기에 도전했다기보다는, 금기에 대한 도전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마돈나는 레이거노믹스의 1980년대에 탄생한 물질주의의 화신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세상에 살고 있고 난 물질적인 여자"('머티리얼 걸')라는 식의 자기 패러디조차 당당하게 환금시킨 현실주의자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가장 악명 높은 스캔들메이커로서 마돈나의 양면은 그와 같은 태도에서 비롯했다. 그는 완고한 프로페셔널이자 철저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을 경영했다. 스스로 연기자인 동시에 연출가였고, 스타인 동시에 '스벤갈리'(누군가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매니저 등 스타를 통제·관리하는 이들을 일컫는다)였다. '라이크 어 버진'의 거대한 성공이 그 표본이다.

'라이크 어 버진'은 1984년 11월 발표된 동명 앨범 수록곡으로, 마돈나에게 싱글 차트 정상을 안겨준 최초의 노래다. 결과론이지만, 이 곡의 성공은 같은 해 9월14일 펼쳐진 1회 '엠티브이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보장받은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크 어 버진'을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이날 공연에서 마돈나는 속이 비치는 백색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무대 위를 뒹굴었다. 면사포를 벗고 머리를 헝클어뜨린 그가 레이스 스타킹과 가터벨트를 드러낸 채로 무대에 누워 노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자 스캔들이었다. 게다가 장면들은 노골적인 노랫말과 결합하여 전례 없는 강도의 섹슈얼리티를 시청자의 안방으로 중계했다. 노래는 발표도 되기 전에 이미 히트곡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 비평가 조이스 밀먼은 마돈나가 "전통적 제도를 공격하거나 고전적 백일몽을 타락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고 썼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산층의 감춰진 욕망을 이용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라이크 어 버진'은 '성녀-창녀 콤플렉스'에 대한 여성의 적극적 대응을 구체화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워너비'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여 마돈나를 지지한 세력은, 그의 섹스 어필에 매료된 남성들이 아니라, '보이 토이' 버클과 검은 브라톱과 십자가 귀고리를 따라 한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이 방증하는 바다. 그들에게 마돈나는 "자신을 표현하라"고 말해준 최초의 스타였다. 폴라 압둘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까지, 이후 등장한 모든 여성 댄스 팝 퍼포머들을 창백한 모조품으로 만들어버린 카리스마의 핵심이 거기 있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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