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잣대' 꺾어버린 팝 음악의 혁신

2009. 11. 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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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99] 프린스의 <웬 더브스 크라이>(1984년)

밀로시 포르만의 영화 <래리 플린트>(1996)는 도색잡지 발행인의 좌충우돌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 바 있다. 여기에 이른바 '래리 플린트의 패러독스'가 나온다. 요컨대, "살인은 불법이지만 그런 장면을 촬영하면 <타임>에 이름을 싣거나 퓰리처 상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에,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런 행위를 촬영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일 폭격 장면을 컴퓨터게임처럼 보여주는 텔레비전 뉴스가 대중문화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 일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작 무서운 일은 자의적으로 남용되는 검열의 잣대가 아닌가?

그런 논쟁이 1980년대 불붙은 바 있었다. 장본인은 티퍼 고어. 뒷날 미합중국 부통령 자리에 오르는 앨 고어의 부인으로, 대중음악계의 우상이었던 마돈나의 대척점에서 대중음악계의 공적이라는 악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히트곡으로 스타덤에 오른 마돈나와 달리, 하나의 로비 활동만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학부모 음악 조사 센터'(PMRC)를 설립해 음반업계로 하여금 특정 레코드의 표지에 경고 스티커를 붙이도록 압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조처는 즉각 반발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언론, 출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 헌법 1조'에 역행하는 사전 검열의 성격이 농후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티퍼 고어가 피엠아르시 활동에 나서는 직접적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프린스였다. 고어는 당시 11살이던 딸이 그의 노래 '달링 니키'를 듣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고 행동에 나섰는데, 노랫말의 성적 묘사 때문이었다. 물론, 고어는 프린스가 성적인 환상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프린스가 실상, 마약과 알코올을 혐오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그의 음악이 전례 없이 독창적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달링 니키'를 수록한 앨범 <퍼플 레인>은 두 곡의 넘버원 싱글 포함 네 곡의 톱텐 히트곡을 쏟아냈다. 그래미 두 개 부문과 아카데미 '최우수 주제가'상을 휩쓸고, 미국 내에서만 1300만장 판매고를 기록함으로써 대중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피엠아르시 파문은 오히려 앨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더욱 높이는 작용만 했을 뿐이다.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앨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퍼플 레인>은 프린스의 음악적 혁신을 결집한 역작이다.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이기도 한 이 앨범에서 단연 백미는 원초적 단순함을 고도의 복합성으로 승화시킨 마법 같은 노래 '웬 더브스 크라이'다. 프린스는 이 노래에서 전위적인 인트로와 클래시컬한 아우트로를 병치했고, 음악적 효과를 위해 베이스 라인마저 삭제해버리는 파격을 시도했다. 비평가 브렌트 디크레센조는 이 노래가 "계획과 통제라는 기준에 있어 프린스의 천재성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고 했고, 개리 멀홀랜드는 "미래주의적 팝 음악의 기념비"라고 평했으며, 데이브 마시는 "현대적 히트곡이 갖춰야 할 리듬과 구조의 새 지평"이라고 썼다. 노랫말은 문제가 아니었다. 가사의 단어 몇 개로 음악 전체를 판단하려는 일이 문제였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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