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 접수한 '아프리카 하이브리드'

입력 2009. 10. 6. 19:30 수정 2009. 10. 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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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95] 아프리카 밤바타의 <플래닛 록>(1982년)

"임신부를 위한 모차르트" 류의 음반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시대에 음악을 통한 인성 교육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예컨대, 베네수엘라의 빈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이나 (상당한 수준의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름을 기린 팔레스타인의 국립 콘서버토리는 그 효과를 입증해 보인 가장 성공한 사례들로 손꼽힌다. 물론, 그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들도 존재한다. 이른바 '줄루 네이션'은 그것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이다. 갱생한 전직 갱스터들이 조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심장한 이 커뮤니티는 힙합을 바탕으로 종교적, 문화적 가치관의 공유 집단을 구축한 특별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중산층 흑인 청년들이 스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갱스터 출신으로 행세한다는 코미디 영화 <시비4>(1993)의 풍자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힙합은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하위 문화의 대명사로 인식되곤 한다. 인종적 갈등과 반영웅적 환상을 마케팅 수단으로 왜곡시킨 탓이다. 그런 측면에서 '줄루 네이션'은 힙합의 본래 지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인시키는 역사적 증거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갱스터의 우두머리였으나 힙합의 개척자로 인생 행로를 수정한 아프리카 밤바타가 프로그램 설립자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2007년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함께 힙합 뮤지션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헌액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영전에는 실패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아프리카 밤바타는 힙합 형성기의 가장 중요한 뮤지션 가운데 하나였다.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의 영향력을 자각한 그는, 힙합을 매개로 거리의 청소년들을 감화시키는 사업과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개척하는 실험을 병행했고 마침내 스타덤에까지 올랐다. 골드 레코드(100만장 판매. 현재는 50만장으로 기준 축소)를 기록한 최초의 힙합 싱글 가운데 하나인 '플래닛 록'을 통해서였다.

'플래닛 록'은 대중적 성공을 넘어선 음악적 성과로 더욱 두드러진 자취를 남겼다. 솔과 펑크(Funk)와 디스코의 고전들에서 발췌한 브레이크 사운드에 안주하던 대부분의 동시대 힙합 디제이들과 달리, 밤바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펑크(Punk) 록까지, 크라우트 록에서 뉴웨이브까지 흑인 음악의 전통 밖에 존재하는 음악적 양식들을 적극 수용했다. 더불어 당대의 첨단 하드웨어들을 사용하여 창작적 방법론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밤바타의 절충주의가 창조해낸 하이브리드였다.

실제로 '플래닛 록'은 최초의 프로그램 가능한 드럼머신 중 하나였던 롤랜드 티아르-808과 최초의 다중화음 샘플링 신서사이저였던 페어라이트 시엠아이를 통해, 크라프트베르크의 '트랜스-유럽 익스프레스'(1977)와 '넘버스'(1988)를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로 구성해낸 밤바타식 절충주의의 극단이었다. 비평가 데이비드 하워드의 말마따나 밤바타는 이 노래를 통해 "기계도 펑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빌 브루스터와 프랭크 브로튼의 지적처럼 "하우스의 기원에는 공인된 영감을, 미래의 힙합에는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대륙에서 거둔 줄루족의 승리였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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