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63 창간특집]한국인은 복제인간

박래용 사회부장 2009. 10. 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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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복제인간, 붕어빵 인생이다. 도시도 축제도 소비도 얼굴도 판박이다. 하루 일상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경쟁 탈락의 공포에서 비롯된 것" "근대화 과정에서 싹튼 줄서기 강박관념"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경향신문이 창간 63주년을 맞아 2009년 한국, 한국인의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일상의 적나라한 실태와 원인, 대안 등을 진단해본다.

5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에서 내려다본 강북지역에 똑같은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한 아파트 숲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다. |강윤중기자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광주 충장로…. 전국 대도시 어디를 가든 유명 신발·의류·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중심가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은 서울 명동과 똑같다.

도시·농어촌 가릴 것 없이 전국 곳곳에는 똑같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도 'GS25' 편의점이 불을 밝히고 있을 정도다. 당연히 소비 패턴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제주대 허남춘 교수는 "서울에서 온 판박이 소비 구조에 마라도까지 편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열고 있는 고기잡이 체험, 가요제, 요리대회 같은 1000여개의 축제 행사는 다른 지역 성공사례를 베끼기에 급급, 고유성이 실종된 상태다.

'성형 공화국'은 오래된 얘기다. 거리엔 동그란 눈에 오똑한 코, V자형 얼굴의 '김태희' '전지현'이 넘쳐난다. 마네킹 같은 복제미인의 양산은 급기야 복스러운 코 같은 자신만의 개성을 부끄럽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똑같은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한 아파트 문화는 복제도시의 근거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주거지 중 아파트 비율은 53.0%이고, 인구의 47.2%가 아파트에 산다. 한국인들은 그 네모난 공간 안에서 고만고만한 안락과 고민에 익숙해져 있다. < 88만원 세대 > 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1960년대 이후 압축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가치의 획일화가 지금의 복제사회를 형성했다"고 진단했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뿐 아니다. 고교생부터 20대, 주부·직장인, 장년·노인층까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똑같은 일상의 판박이 삶을 보내고 있다.

가장들은 가족과 돈 걱정 속에 아침부터 밤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을 살며 일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든 안 다니든 자녀 교육에 '올인'한다. 획일적인 삶을 탈출하는 주말에도 한국인의 표준 취미는 등산이다. 고교생 딸은 365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기계 같은 생활'을 하고 있고, 20대 아들은 취업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 박성민씨(27·서강대)는 "주류 사회 탈락의 두려움 때문에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는 인식이 어릴 때부터 체득돼 있다"고 말했다.

문화비평가 김규항씨는 "지금의 복제사회는 좇으면 좇을수록, 경쟁에서 탈락하는 누군가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정글사회"라며 "새롭고 다양한 가치 지향으로 복제사회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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