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마차부속… 고조선이 살아난다

이기환 선임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내달 2일 고조선실 개설

“엄밀하게 말해 박물관 100주년 사업의 고갱이는 바로 ‘고조선실’ 신설을 뼈대로 하는 전시실 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양 상리 출토 유물

평양 상리 출토 유물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오는 11월2일로 예정된 전시실 개편과 관련, “통사의 개념으로 우리 역사를 완전정리했다는 점에서 숙원을 푸는 셈”이라며 “이것이 바로 ‘역사바로세우기’ ”라고 말했다. 2005년 용산시대를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조선실의 부재와 식민사학의 잔재가 남아있는 용어로 지목된 ‘원삼국실’의 존재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전시실은 어떻게 개편되는가. 잠정안에 따르면 ‘구석기실→신석기실→청동기 및 초기철기실→원삼국실→고구려·백제·가야·신라실~’ 순으로 되어있던 전시구성이 ‘구석기→신석기→청동기→고조선실→부여·삼한실→고구려·백제·가야·신라실’~로 대폭 바뀐다.

◇ ‘고조선실’ 어떻게 꾸며지나

우선 기존의 ‘청동기 및 초기철기실’ 가운데 ‘초기철기’의 개념 대신 ‘고조선실’이 신설되는 것이 핵심이다. 최 관장은 “고조선실 신설은 이미(2007년) 고조선의 건국을 못박은 국사교과서의 흐름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고조선과 관련된 유물이 많지 않은 게 박물관의 깊은 고민. 일단 204㎡의 전시실에 실물로 존재하는 북한 출토 ‘랴오닝(遼寧)식 동검’과 고조선인과 그 유민들이 사용했거나 제작한 명도전(明刀錢), 가평 달전리 출토 철극(鐵戟·좌우로 갈라진 창 같은 무기)과 화분형·배부른 토기, 평양 출토 마차부속구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고조선 토기인 미송리식 토기 등은 복제품으로 전시할 방침이다.

북한 출토 청동기·초기 철기류

북한 출토 청동기·초기 철기류

김재홍 학예연구관은 “단군신화에 대한 문헌자료와 논쟁 등도 그래픽으로 꾸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조선실’을 ‘고조선 시기’라는 개념으로 보아 한국형 세형동검 등 고조선과 같은 시기에 한반도 남부에서 유행한 유물들을 비교문화 차원에서 전시한다는 방침이다.

◇ 원삼국실 폐지→부여·삼한실 신설

또한 식민사학의 잔재라는 평 속에 모호한 고고학적 개념이라는 논란을 빚어온 기존의 ‘원삼국실’이 폐지된다. 그 자리를 ‘부여·삼한실’이 메운다. 최광식 관장은 “남(삼한) 북(부여)을 대표한다는 뜻에서 ‘부여·삼한실’로 했지만, 이곳에서는 동예와 옥저 코너도 문을 연다”고 말했다. 부여의 경우 사료 위주로 꾸미는 패널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다만 백제의 조상인 부여계 유물로 평가되는 풍납토성 출토 ‘복골(卜骨)’과 금귀고리 편, 김포 양촌리 출토 금귀고리의 전시도 고려 중이다. 동예의 경우 호암미술관 소장인 ‘진솔선예백장동인(晋率善濊伯長銅印·중국 한나라 이후 주변국 왕에게 준 도장)의 대여를 추진 중이다.

대전 출토 농경문 청동기

대전 출토 농경문 청동기

그리고 그동안 ‘원삼국’이라는 모호한 개념 속에 묶여 전시된 ‘삼한(三韓)’의 유물들을 지역별로 나눠 마한·진한·변한 유물로 세분화할 방침이다. 최 관장은 “ ‘원삼국(기원 전후~기원후 300년)’은 고고학계 일부만이 쓰는 용어”라면서 “사서에 등장하는 팩트 위주로 전시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 그래도 남는 고민

그러나 개관일까지 풀어야 할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박물관은 기존의 ‘청동기 및 초기철기실’을 ‘청동기실’과 ‘고조선실’로 잠정적으로 나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나눌 수 있는 문제일까. 2007년 개정된 국사교과서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건국됐다”고 분명하게 기술돼 있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도록에도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건국되었다”고 분명히 써놓았다. 하지만 박물관 측은 ‘청동기실’과 ‘고조선실’의 시대구분을 기원전 8~7세기 기준으로 나누고 있다. 이는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부합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 경우 ‘청동기실’에 전시될 청동기가 사실상 없다는 고민에 휩싸인다.

김재홍 학예관은 “ ‘청동기실’에는 전기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동기실’에 전시될 예정이라는 ‘농경문 청동기’도 기원전 4세기 무렵의 작품이며, 그 외에는 옥과 돌도끼, 토기가 주요 전시품들이다. 박물관 측은 “처음부터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청동기실’과 ‘고조선실’을 잠정적으로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 역시 고조선을 ‘한반도 안’이라는 좁은 틀에서 보는 데서 비롯된 소극적인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유물 부족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용기를 내 ‘고조선실’을 신설해놓고는 다시 “박물관이 여전히 반도에 갇힌 역사인식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조선실’이라는 큰 틀에서 전후기 청동기를 해석한다면 잘못된 일일까.

김재홍씨는 “아직 개관일까지 시간이 있으므로 제기된 문제점들을 두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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