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문법' 혁명적 설계자들

2009. 9. 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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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94]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더 메시지〉(1982년)

200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은 특별했다. 3월12일, 미국 뉴욕의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서 펼쳐진 행사를 통해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가 힙합 뮤지션 사상 최초로 대중음악사의 판테온에 영전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명예의 전당은, 데뷔작을 발표하고 25년이 지나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시간의 시험을 거치며 음악적 영향력을 검증받은 뮤지션들에게만 입회를 허락하는 최고 권위의 영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헌액은 말하자면, 기성의 권위가 힙합의 가치를 최종 추인한 상징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로이터> 통신이 관련 소식을 타전하며 "로큰롤이 힙합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를 강조했던 이유도 거기 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는 무엇보다 힙합의 문법을 체계화한 기록자로 최우선의 평가를 받는 존재다. 비트를 조합하는 체계와 라임의 전달 방식을 개선하고 정착시켜 힙합의 단편적 요소들을 완결된 형식으로 다듬어낸 혁신적 중재자들이었다. 디제이 쿨 허크와 아프리카 밤바타, 그리고 슈거힐 갱과 커티스 블로의 음악적 성취들을 모조리 매개해냄으로써 리듬과 래핑, 사운드와 메시지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통해 힙합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의 노래 '더 메시지'는 바로 그 완성형 모델이었다.

'더 메시지'는 흑인 사회의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는 저항의 언어라는 측면에서 랩의 인식적 기반에 이정표를 세웠다. 1981년 발표한 싱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온 더 휠스 오브 스틸'에서 커팅과 스크래칭 등의 진일보한 브레이크비트 운용법을 담아낸 데 이어, 이 노래를 통해서는 사운드의 혁명에 필적하는 메시지의 혁신까지 이뤄냈다.

이 노래는 게토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묘사("깨진 유리가 사방에 널려 있어/ 사람들은 계단에다 방뇨를 해대지")로 시작해서, 감옥에서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냉소("너의 싸늘하게 식은 몸뚱이가 (목매달려) 앞뒤로 흔들리지/ 하지만 이제서야 네 눈은 슬프고도 슬픈 노래를 부르네/ 네가 얼마나 성급하게 살아왔고 얼마나 미숙하게 죽었는지에 대해")로 끝을 맺는다. 흑인 동네의 파티 문화에서 파생한 랩 라임의 통속적 언어 유희를 거부하고 흑인 사회의 살벌한 현실을 직시하는 생생한 증언들을 쏟아낸 것이다. 거리의 현실을 다룬 랩이 전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냉정한 태도와 음악적 지향을 동시에 충족시킨 경우는 '더 메시지'가 처음이었다. 비평가 게리 멀홀랜드는 이 노래가 "힙합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하룻밤 사이에 뒤바꿔놓았다"고 평했다.

'더 메시지'의 양상이 충격적일 만큼 새로웠다는 점은 밴드 멤버들조차 애초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는 사실에서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창고에 처박힐 운명으로부터 이 노래를 구해낸 것은 메인 엠시 멜르 멜의 개인적 노고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이력뿐만 아니라 힙합 역사 전체를 가름한 선견지명이 되었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힙합의 표정은 오늘과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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