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예술의 부스러기 '낯선 전율'

2009. 9. 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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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93] 로리 앤더슨의 <오 슈퍼맨>(1981년)

뮤직비디오의 등장이 비주얼 이미지를 음악적 기호의 핵심적 인자로 보편화시킨 사건이긴 했지만, 그 실재적 연원은 음악의 탄생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오래다. 주지하다시피, 레코드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음악은 무대 예술의 범주에 속해 있었고 음악 감상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경험을 동반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레코드가 상용화된 이후에도 변한 것은 없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무대 공연은 더욱 현란한 양상으로 진화해갔고, 커버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따위의 요소를 포함한 앨범 패키지가 일반화하면서 대중음악에서 시각적 소구력의 효용은 외려 더욱 강력해졌다. 그래서 때론 미술가의 창조적 영감이 음악적 형식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예컨대, 앤디 워홀의 경우가 그랬고 로리 앤더슨이 또한 그랬다.

로리 앤더슨은 1980년대의 전환점에서 나타난 워홀의 업그레이드 확장판 격인 존재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조각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앤더슨은 1970년대 후반부터 뉴욕 전위 예술계에서 활동하며 미술과 기술, 연주와 연극을 결합한 퍼포먼스 아트 분야로 두각을 나타냈다. 비평가 마크 데리는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여 앤더슨의 당시 작업이 "이미지, 제스처, 음악적 사운드, 오브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복잡한 조합으로서의 기호작용"이라고 평한 바 있는데,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는 제목의 여덟 시간짜리 무대 작품의 부산물로 파생한 '오 슈퍼맨'은 그와 같은 창작행위의 총아였다. 대중음악 작법의 전통과는 무관한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오 슈퍼맨'은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한 형식의 음악적 콜라주다. 쥘 마스네의 오페라 <르 시드>(1885)에 담긴 아리아 '오 군주여, 오 판관이여, 오 아버지여'에서 차용한 선율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노자의 <도덕경>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엮어, 보코더로 왜곡시킨 자동응답기의 메시지 형식에 담아낸 이 노래의 방법론은 생경한 전율 그 자체였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오 슈퍼맨'이 보편성에 호소하는 정서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비를 들여 소량으로 제작한 이 노래가 대양 너머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비평가 길리언 가는 이 노래가 "당대의 어떤 '대안적인' 레코드와도 완전히 달랐다. 뻔한 유행 상품이라 일축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편안하게 주류의 틀에 끼워 맞추기에는 너무나 파격적이었으며, 젠체하는 엘리트주의나 예술가연하는 태도라고 쉽게 평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친근했다"고 평했던 것이다.

로리 앤더슨의 작업과 '오 슈퍼맨'의 성취는 매체와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더욱 각별한 상징성을 띤다. 시뮬라크르(모방 현실)가 생산해낸 하이퍼리얼리티(극사실성)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낸 방식은 예언적이었다고 할 만큼 시대를 앞선 시도였기 때문이다. 마크 데리는 그것을 가리켜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의 위기를 결정화시켜" 보여준 것이었다고 썼다. 페티시와 패스티시를 작품으로 포장해내는 이즈음의 세태를 생각해볼 일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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