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헤비메탈-펑크 록 크로스오버 밴드

2009. 9. 1.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세상을바꾼노래 90] 모터헤드의 <에이스 오브 스페이즈>(1980년)

대중음악 장르는 그만의 하위문화를 동반한다. 그것은 스타덤이 만들어내는 밈(문화의 구성 요소)의 현상인 동시에, 팬덤이 구축해내는 연대 의식의 기반이다. 새로운 음악적 경향이 복장, 머리 모양 따위의 유행을 수반하는 양상이 쉬운 예다. 비평가 키스 네거스가 "음악 장르들의 내부 혹은 사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란 음악적 행위 이상의 사회적 행위다"라고 지적한 근거다. 하위문화의 파급력이 해당 장르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패러다임 또한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헤비메탈과 펑크 록이다. 젊음과 반항의 표상으로 일반화한 하위문화 코드들을 통해 유행의 부침을 넘나들며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두 장르가 상호 대립적인 인자들을 강조함으로써 공생해 왔다는 아이러니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은 치렁치렁한 장발과 가죽 재킷을, 펑크 록은 삐죽삐죽한 단발과 티셔츠를 각각의 유니폼 삼아 서로의 차이를 명백히 했다. 음악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물론, 볼륨에 대한 집착이란 측면에서 헤비메탈과 펑크 록은 얼핏 유사해 보일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접근법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비평가 스티브 왁스먼은 음량에 대한 헤비메탈과 펑크 록의 상반되는 가치관을 분석한 바 있다. 요컨대, 헤비메탈은 소리의 크기를 "압도적인 권력의 인식으로서 투사하고 전도하는" 반면에 펑크 록은 "사운드의 관습을 교란하여… '소음'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헤비메탈이 기존 질서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펑크 록은 그것을 거부하는 역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상호 대척적인 입지가 개별 생존의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모터헤드란 밴드의 등장이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 있다.

모터헤드는 장르의 사생아와 같은 존재였다. 전례가 없었다. 비평가 스티브 왁스먼은 모터헤드가 "최초의 헤비메탈/펑크 록 크로스오버 밴드이거나, 적어도 그렇게 묘사된 최초의 밴드"라고 썼다. 게리 멀홀랜드는 그들이 "펑크 록과 헤비메탈, 그 각각의 최악(혹은 최선?)의 극단들을 뒤섞어 놓았다"고 평했다. 모터헤드는 장발에 가죽옷을 걸치고는 3분짜리 소음을 연주한 밴드였다. 전통적인 음향의 구성과 테크니컬한 기타 솔로 채용에서라면 헤비메탈이었고, 두어 개의 코드 사이를 질주하는 단순함과 정제되지 않은 질감에서라면 펑크 록이었다. 게다가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레미의 야수 같은 목소리에는 양자의 특성이 혼재해 있었다.

주목할 것은, 이후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혹은 퓨전) 경향이 본격화하면서 모터헤드의 포스트모던적 특성이 시대를 앞선 미덕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80년대의 스래시 메탈과 90년대의 그런지 록에서 모터헤드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모터헤드의 궁극적 찬가로 일컬어지는 '에이스 오브 스페이즈'는 가장 유력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장르의 구분은 의미를 상실한다. 밴드의 말마따나 이건 "무엇보다 로큰롤"이고 "그저 로큰롤"이기 때문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