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27> 후지타 사유리(藤田小百合)

2009. 8.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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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자유의 씨줄과 사랑의 날줄엉뚱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엽기적인 그녀'

KBS2 텔레비전의 월요일 밤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동안 눈길을 뗐다. 엇비슷한 소재와 형식이 되풀이되면서 초기의 상큼함에 상투성의 이끼가 잔뜩 낀 데다가, 몇몇 출연자들의 언행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두고 흘러나온, 아름답지 못한 소문도 내 거부감을 부추겼을지 모르고, 같은 방송사의 1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러브 인 아시아' 출연자들과의 비교가 내 알량한 정치적 미적 감수성에 '양식(良識)의 파문'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패널을 포함한 출연진의 면면을 확인한 뒤 채널을 바꾸다 말다 하기를 몇 번, 이내 같은 시간대에 어느 케이블 방송에서 내보내는 미국 수사물(搜査物)로 '전향'한 지가 꽤 되었다.

'미수다' 장수 출연 인기인이지만 속내 가늠 어려워

미니홈피 속 손가락 불구 친구 이야기 '가슴 뭉클'

인간에 대한 예의·사랑 지닌 아름다운 내면 느껴져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케이블 방송을 신청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이고 책 좀 가까이 하자는 기특한 생각에서였는데,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지상파는 밤샘 방송을 하지 않으니 텔레비전 앞에서 밤을 새는 일은 없어졌지만, 자정을 한참 넘겨 애국가가 흘러나오기 전까진 여전히 텔레비전 중독이다. 그저, 보는 프로그램이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의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연히, 한동안 외면했던 '미녀들의 수다'에도 더러 눈길을 주게 되었다. 사실 반갑기도 했다. 예전에 못 보았던 새 얼굴들에도 관심이 갔지만, 얼마 동안 잊고 있었던 옛 얼굴들에 더 정이 갔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 후지타 사유리(藤田小百合)씨('후지타상'에겐 결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관례대로 그냥 '사유리'라 부르려 한다)가 여전히 건재한 것을 보고는 가슴이 뭉클해졌다(과장이 아니다. 그녀의 '엽기ㆍ獵奇'에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다. '미수다' 출연진 가운데 단 한 사람과만 저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마 약간 망설인 뒤에, 사유리를 택할 것 같다).

'미수다'는 여전히 좋다가 싫다가 오락가락이다. '미녀詩대' 코너라는 걸 처음 봤을 땐, 팔다리에 소름이 돋아 급히 채널을 돌리기도 했다.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시를 희화화하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 '미수다'의 원형이라는 일본의 모 프로그램에, 외국인 여성들에게 하이쿠를 짓게 하는 코너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디 불평하는 것이 시청자의 역할인 만큼, 제작자들이 내 말을 너무 고깝게 듣지 말았으면 한다.

다시 우리 사유리에게로 돌아가자.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녀의 미니홈피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1979년생이라는 걸 안 것도(뜻밖에도 '나이배기'다), 그녀 이름을 한자로 '藤田小百合'이라고 쓴다는 걸 안 것도 그 곳에서다. 그러니까 '사유리'는 '백합'이라는 뜻이다. '유리'만으로도 '백합'이다. 그 앞에 붙은 '사(小)'는, 반드시 작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뒤에 따라오는 명사를 미화하는 접두사다. '미수다' 출연진 가운데 우리 '백합'양과 가장 친한 이는 영국인 에바 포피엘양인 모양이다. 에바가 사유리 미니홈피의 'Photo'난과 'Video'난에 자주 등장해서 그리 짐작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사유리의 미니홈피에는 그녀가 한국어로 쓴 글이 마흔여섯 개 올라와 있다. 전부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글인지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 실마리를 얻은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착한 글'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한 때 일본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구리 료헤이(栗良平)의 <우동 한 그릇>처럼, 읽는 이의 누선(淚腺)을 건드린다. 아니, <우동 한 그릇>보다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묶인 글들 쪽인 것 같기도 하다. 깊이라 할 만한 것은 부족하지만, 그 글들은 세상에 대한 선의와 사랑으로 그득 차 있다.

예컨대 '네 손'이라는 글(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하고 산문시 같기도 하다)의 전문(全文)은 이렇다(한국어로 부자연스러운 데나 틀린 맞춤법도 있지만 그대로 옮긴다).

"그녀는 항상 오른손을 숨기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도 왼손으로 빵을 뜯었고 수업 중에도 왼손으로 펜을 잡으면 오른손은 항상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 알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그녀가 장갑을 벗자 손가락이 3개밖에 없었다. 그녀는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3개밖에 없다고 그 손이 아기였을 때부터 성장하지 않는다고…

친구여 마음이 없는 사람이 그 손 때문에 너를 상처 주었겠지. 친구여 그 손 때문에 자기 자신의 마음도 쥐어 뜯겨 왔게지. 친구여 그 쥐어뜯긴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렸을까. 그래도 친구여 네 그 작은 손이 커다란 지구를 만지고 羚? 민들레처럼 따뜻한 그 손으로 넌 다정하게 지구를 어루만지고 있어. 친구여 네 손은 아름다워."

물론 사유리가 역할 연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착한 여자의 역할을. 흔히, 일본사람을 나쁘게 얘기할 때(그 속을 알 수 없다고 말할 때), 혼네(本音ㆍ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ㆍ표면상의 원칙, 겉치레) 사이의 차이를 거론한다. '혼네와 다테마에의 갭'이라는 표현 자체가 일본어에 있는 걸 보면, 일본인 스스로 자신들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로코인이든, 혼네와 다테마에가 늘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호모사피엔스가 지적인 동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워 보이는 행동으로 아름답지 못한 내면을 감출 수 있는 교활함(지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냉철히, 객관적으로 살피면, 호모사피엔스는 그리 매력적인 동물이 아니다. 그 내면까지 아름다운 동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예외도 있고 정도 차이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비열하다. 한마디로 추하다. 우리가 그 내면까지 아름다운 동물이 될 수 없다면, 그 내면의 추함을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제어하고 치장하는 것은 욕먹을 일이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다. 흔히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는 거푸집이기 때문이다. 그 형식, 그 다테마에는 '문명'의 소산이고 '예절'의 다른 이름이다. 그 '예절'을 통해, 그 다테마에를 통해, 인간은 문화적 존재가 된다.

나는 사유리의 내면을, 혼네를 모른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녀의 얘기를 들을 때처럼, 그녀 홈피의 글들을 읽어보니, 그녀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닌 여성임을, 아름다운 다테마에를 견지하고 있는 여성임을 알겠다.

게다가 우리의 내적 자아와 외면 사이에 그렇게 여러 겹의 피부가 있을까? 내면과 외면 사이에, 혼네와 다테마에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범퍼'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범퍼'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 대부분은 생각하는 동물로서 연기를 하지만, 모두가 뛰어난 연기자인 것은 아니다. 폴 발레리는 "살갗이야말로 더없이 내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드가의 그림을 평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지만, 사실 인간존재와 세상살이의 많은 경우에 외면은 내면을, 다테마에는 혼네를 반영한다.

무명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페르냉(우리들에겐 다 이름이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권력장ㆍ權力場 속에서 '무명'이기도 하다)이 <쇼핑의 철학>(백선희 옮김)이라는 책에서 사용한 비유를 훔쳐오자면, 사유리의 정체성은 사유리의 감정, 사유리의 기억, 사유리의 견해, 사유리의 계획, 사유리의 이웃과 친구와 가족, 사유리의 펜과 노트북 따위를 적분(積分)한 것이다.

사유리의 정체성은 사유리에게 속한 것 하나하나에 사유리를 묶는 끈들을 연결함으로써 짜인다. 맨몸의 인간은 없다. 맨몸의 자아는 없다. 몸에 색을 바르고 천을 걸친 인간이, 그런 자아가 있을 뿐이다. 사유리의 자아는 사유리가 걸친, 갖가지 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천이다. 그 천을 빛나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사유리의 엽기다. 그 엽기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고, 만끽되는 자유다.

얼핏 듣기에, 사유리는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도 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미국에서 뭘 했는지(공부를 했다고는 한다, 뭘 공부했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미수다'에 출연하는 것말고 뭘 하는지(학생이라고는 한다, 좀 '늙은' 학생이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 한 구석이 사랑과 자유로 짜인 엽기의 피륙으로 휘감겨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엽기적인 그녀'가 4월1일 도쿄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진지한 목소리로 울먹인다. "아빠, 평양에 잠깐 놀러왔다가 스파이로 몰려 억류돼 있어요. 어떡하죠?"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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