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무브먼트 젠더 장벽 허문 '한방'

입력 2009. 8. 4. 19:00 수정 2009. 8. 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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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85] 엑스레이 스펙스의 <오 본디지, 업 유어스!>(1977)

펑크 무브먼트의 대중음악사적 의의 가운데 하나는 젠더의 장벽을 허물었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 영역으로 남아 있던, 남근 숭배적 자의식을 특성이자 특권으로 포장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했던 록 음악계의 관성을 거스르고 여성 뮤지션들이 전위로 나서는 현상을 본격화시킨 것이다. 변혁의 동인은 펑크 구성원들의 동질감에서 비롯했다. 국외자와 소수자의 연대가 가져온 부수적인 효과였던 셈이다. 당대에 불어닥친 페미니즘 문화운동은 그런 흐름의 가속화에 한몫을 했다.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은 영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뉴욕의 펑크 무브먼트를 주도했던 패티 스미스, 데비 해리(블론디), 티나 웨이머스(토킹 헤즈) 등의 존재감이 자극제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영국적 상황의 아이러니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 비평가 조이 프레스의 말마따나, "펑크 이전의 영국 로큰롤은 실질적으로 여성이 전무한 사막"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런던의 펑크 무브먼트에서 여성의 역할이, 뉴욕의 경우와 달리, 음악계 외부에서 내부를 향해 이동하는 양상을 띤 것을 봐도 그렇다.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 맬컴 매클래런의 파트너로서 펑크 패션을 창안하다시피 했던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와, 펑크 무브먼트의 페미니즘적 속성을 가장 먼저 의제화했던 화가 겸 작가 캐럴라인 쿤의 역할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영국 최초의 여성 펑크 로커들이 팬덤의 소산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18살 나이에 엑스레이 스펙스를 결성한 소녀 메리언 엘리엇은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엑스레이 스펙스는 3년 남짓한 활동 기간에 단 한 장의 정규 앨범만을 남기고 단명했음에도, 영국 펑크 록의 역사에 가장 두드러진 흔적을 남긴 밴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강렬한 개성과 독자적 시각으로 시대를 앞섰던 덕분인데, 거기서 결정적인 구실을 한 주인공이 바로 보컬리스트 메리언 엘리엇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자각에 더해 소비자로서의 인식까지 메시지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는, 대량소비 문화와 그것의 인공적 속성을 상징하는 폴리 스타이렌을 예명으로 삼음으로써 펑크의 반자본적 윤리를 진화시켰던 것이다.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에서 밴드 이름을 빌린 목적도 물론, 같은 이유였다. 엑스레이 스펙스의 데뷔 싱글 '오 본디지, 업 유어스!'는 그처럼 현대적인 문제의식이 만들어낸 매니페스토에 다름 아니었다.

여성에 대한, 물질에 의한 "속박은 집어치워"라고 외치는 '오 본디지, 업 유어스!'의 주장은 색소폰을 전면에 내세운 생경한 사운드의 실험을 통해 더욱 신선한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16살 여고생으로 엑스레이 스펙스에 합류한 로라 로직의 연주였다. 비록 이 노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기고 결별하긴 했지만, 스타이렌과 로직의 협연은 펑크 무브먼트에서 여성 파워의 성장을 상징하는 이정표로 남기에 충분했다. 생각건대, 언론소비자 주권 운동이 범법행위 취급을 받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 심대한 위협을 받는 지금 여기의 상황은 이 노래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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