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무명 펑크밴드

2009. 7. 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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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바꾼노래 85] 텔레비전의 <마키 문>(1977년)

펑크 록의 3분-3코드 형식은 그것의 아마추어리즘과 관계 깊다. 이른바 펑크 록의 에토스라는 '디아이와이'(두 잇 유어셀프)의 태도가 가리키는 바다. 비평가 데이비드 브래킷은 펑크의 아마추어 미학이 "의도적으로 단순화시킨" 사운드를 강조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록 음악을 가장 기본적 요소들로 해체하는 미니멀리즘"이 방법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펑크 록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 펑크 록은 반기교적이라는 믿음이다.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펑크 록 아이콘들인 시드 비셔스(섹스 피스톨스)와 리처드 헬(보이도이즈) 등은 연주도 거의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최초의 펑크 록 팬진 가운데 하나인 <스니핑 글루>는 심지어 "여기 세 개의 코드가 있다. 이제 밴드를 결성하자"고 선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마추어리즘을 마치 필요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당화하는 데서 기인한다. "의도적으로 단순화시킨" 사운드의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다. 요컨대, 관건은 연주력을 제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연주력이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기존 음악계와 기성 방법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창조성의 위기에 빠진 대중음악계의 대안으로서, 펑크 록의 의의는 로큰롤의 활기와 열정을 되살릴 미디엄이라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비평가 제임스 울콧이 뉴욕의 시비지비 클럽에서 시작된 최초의 펑크 무브먼트에 대해 "로큰롤의 원동력으로서 그 정신의 복원을 시도"했다고 쓴 근거다. 그가 텔레비전이라는 밴드를 중요한 사례로 언급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은 3분-3코드 형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는 밴드다. 그들 데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마키 문'은 마치 그것을 증언하기 위해 존재하는 노래처럼 보인다. 10분 40초에 달하는 연주 시간의 장대함이 그렇고, 두 대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솔로 파트의 생경함이 그렇다. 이미 1974년께 완성해 놓았던 이 노래를 수년간 가다듬고 고쳐낸 끝에 앨범에 담았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밴드의 리더인 톰 벌레인은 연주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창단 멤버인 리처드 헬과 결별했을 정도다. '마키 문'의 낯설지만 아름다운 선율은 펑크의 아마추어리즘이 무능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른 능력'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셈이다.

텔레비전은 펑크의 성지로서 시비지비 클럽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컨트리, 블루 그래스 앤 블루스'의 이니셜을 조합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애초 펑크와는 아무 상관 없던 시비지비에서 공연을 시작한 최초의 밴드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영어 발음으로 벌레인)의 이름으로, 존 콜트레인의 프리 재즈를 일렉트릭 기타에 접목하고자 했던 톰 벌레인과 텔레비전은 그곳에서 펑크의 열린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후 시비지비에서 데뷔한 동료들과 달리 결코 대중적 성공을 누리지 못한 그들이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무명 밴드"(비평가 로니 새릭)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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