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구호로 펑크 이데올로기 확립

입력 2009. 7. 21. 19:10 수정 2009. 7. 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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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4] 섹스 피스톨스의 <아나키 인 더 유케이>(1976)

1976년 12월 1일, 런던 '템즈 텔레비전'의 매거진 프로그램인 '투데이'에서 방송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출연한 신인 록 밴드가 말썽이었다. 진행자와의 언쟁 가운데 욕설을 포함한 방송 금지용어들을 무더기로 쏟아냈던 것이다. 다음날 영국의 모든 신문이 이 사건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데일리 미러>는 "천박함과 흉포함"을 헤드라인으로 내걸었는데, 그것은 뒷날 이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더 필스 앤 더 퓨리>, 2000)으로 고스란히 사용되었다. 문제의 밴드는, 이미 그 이름부터 선정적인, 섹스 피스톨스였다.

'템즈 텔레비전' 사건은 섹스 피스톨스의 악명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진동하기 시작한 펑크 록의 현상적 실체에 미디어의 관심을 유도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로써 1976년 9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런던의 '100 클럽'에서 벌어진 페스티벌('100 클럽 펑크 스페셜')로 첫 걸음을 내디딘 영국의 펑크 록 무브먼트는 걷잡을 수 없는 광풍이 되어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영국의 정세 때문이었다.

1976년 영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차관을 들여올 만큼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대영제국'의 명성은 퇴락하고 '유럽의 환자'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국제통화기금의 압력에 따라 공공부문의 지출을 대폭 삭감한 결과, 청년실업을 비롯한 사회 문제가 증폭되었다. "태양 아래 빈둥대는 젊은이들"(섹스 피스톨스의 노래 '홀리데이 인 더 선')의 불만이 극에 달했음은 자명한 수순이다. 그것이 펑크 록의 인화성에 불을 놓았고, '아나키 인 더 유케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아나키 인 더 유케이'는 섹스 피스톨스의 데뷔 싱글인 동시에 펑크 록 이데올로기를 확립한 전범으로 꼽힌다. 기실, 영국 최초의 펑크 록 싱글로 간주되는 것은 이 노래보다 한 달쯤 앞서 발표된 댐드의 '뉴 로즈'다. 그러나 이후 펑크 록에 끼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이 노래가 제시한 표준은 초유의 것이었다. 요컨대, '뉴 로즈'가 여자 친구를 소재 삼아 로큰롤의 오랜 관습에 천착했던 반면 '아나키 인 더 유케이'는 반기성의 태도를 반정부의 구호로 확장시킨 최초의 사례였던 것이다. 그 차이는 일렉트릭 기타의 굉음 사이로 터져 나오는 이 노래의 서슬 퍼런 첫 구절에서 이미 결정 나버린다. 보컬리스트 조니 로튼이 불쾌하게 거슬리는 빈정거림으로 "나는 반기독교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다"라고 선언한 순간이다. 이 노래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포스터 또한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누더기가 된 '유니언 잭'을 안전핀과 집게로 고정시켜 놓은 그 이미지는 이후 영국 펑크 록 무브먼트의 깃발로 곧추서게 된다.

이 노래의 발표 뒤 일주일 만에 섹스 피스톨스는 문제의 '템즈 텔레비전' 사건을 일으켰다. 싱글을 발매한 레코드회사 이엠아이는 여론에 떠밀려 대국민 사과와 계약 해지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록 음악의 하위 문화는 이때를 기점으로 영원히 바뀌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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