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고현정, '선덕여왕'의 힘

'선덕여왕'에서 미실 고현정이 차지하는 것

[OSEN=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제목이 '선덕여왕'이니 덕만(이요원)이 그 주인공일까. 그녀와 짝패를 이룰 천명(박예진)이 그 주인공일까. 아니면 이 모든 싸움의 결과를 가져갈 김유신(엄태웅)과 김춘추가 그 인물일까. 아쉽게도 이 모두가 그 주인공은 아니다. '선덕여왕'의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으니까. 그 인물은 바로 미실(고현정)이다.

이것은 미실이 이 사극에서 해오는 역할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미실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선덕여왕이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신하들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여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전횡하는 미실은 이 사극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덕만을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보낸 것도 미실이고, 그 곳에서 천문을 읽는 훈련과 세계의 문물을 경험하게 한 장본인도 미실이 된다.

미실은 이 사극의 가장 중심에 놓여져 있는 힘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카리스마로 무장하고 등장해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했고, 그 카리스마를 통해 상대방을 성장시키기도 했다. 그녀와 대적하는 어린 덕만은 바로 그 행위만으로 자신의 아우라를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은 후에 그녀와 대적하는 천명, 그녀와 대적하는 유신 같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미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캐릭터는 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실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도 하고, 신하들을 자신의 발밑에 줄 세워놓기도 한다. 설원공(전노민)과 세종(독고영재)은 미실을 가운데 두고 묘한 경쟁관계에 놓이고, 그 아들들인 하종(김정현)과 보종(백도빈) 역시 충성경쟁을 하게 한다. 이 충성경쟁이라는 미묘한 관계는 사극에 어떤 흐름을 만들면서도 변수를 가능하게 한다. 결국 미실이라는 존재의 카리스마는 같은 편 내부에서도 독특한 힘과 방향성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 미실은 이 사극의 이야기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사다함의 매화'라는 에피소드 속에는 미실의 비밀스런 과거가 숨겨져 있고, 그 과거는 또한 현재의 권력과 그대로 연관관계를 가진다. 이 비밀 한 가지를 틀어쥐고 있는 미실을 통해 사극은 흥미진진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미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사극의 메시지도 숨겨져 있다. 민심과 천심에 대한 미실과 덕만의 대화는 이 사극이 말하려는 정치적 대결구도의 실체를 드러내준다. 천심을 틀어쥐고 민심을 휘두르려는 미실과 민심을 천심처럼 읽어내려는 덕만은 권력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미실이 이 사극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잠시 미실이 없는(혹은 카리스마 없는 미실) 이 사극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실이 무너지면 사실상 이 사극은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이 어떤 실패 앞에서도 늘 미소 짓고 적까지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려는 여유 있는 모습을 연기해보여줄 때, 이 사극은 힘을 발한다. 혹자는 고현정의 연기가 이요원에 비해 단선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미실이라는 역할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때, 생명력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덕만과는 정반대다. 덕만이 감정적인 인물에서 차츰 감정을 숨기는(조절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미실이 감정 없는 인물(마치 신처럼)로 서 있다가 차츰 감정이 드러나는 인물(역시 인간이었다!)로 변화해가는 과정의 쌍곡선은 이 사극의 핵심이기도 하다.

훌륭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멋진 악역들이다. 대부분의 악역들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을 담당하는 것처럼 '선덕여왕'의 미실도 이 사극의 중추적인 힘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타의 극과 다른 점은 미실이 거의 모든 부분에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끔씩 그 힘겨운 압력을 버텨내고 있는 미실 고현정의 고군분투가 외롭고도 놀랍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선덕여왕'의 힘은 미실 고현정으로부터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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